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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매혹적인 발자취문화 2013. 3. 4. 17:27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
<지데일리=한주연기자> 삶의 환희와 고통, 현실의 적나라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기의 눈’으로 불리며, 20세기 격변의 현장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담아낸 그는 순간의 미학을 추구한 사진예술의 거장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화가로 예술계에 입문한 그는 1931년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중 이국적인 풍물을 촬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다. 초창기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대상에 추상적으로 접근하곤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종군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포로가 돼 수감 생활을 한 뒤, 그는 ‘인간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비로소 사진애호가를 넘어 진정한 포토저널리즘의 길을 걷게 됐다.
1947년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작가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공조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모어, 조지 로저 등과 함께 ‘매그넘포토즈’라는 사진통신사 설립에 참여했다. 매그넘 창립자들은 각각 취재 지역을 나눠 맡았는데, 카르티에 브레송은 아시아로 파견돼 분쟁 중인 인도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 박나경 지음, 뜨란 펴냄
그가 간디를 취재한 것은 간디가 암살당하기 한 시간 전으로, 간디의 마지막 사진은 물론 간디의 장례식을 가장 발 빠르게 취재해 세계적인 명성을 확립했다. 이어 국민당과 공산당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중국으로 건너가 격변의 현장에서 군중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
또한 1954년엔 최초로 소비에트 치하 모스크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 서방에 소개하기도 했다. 장폴 사르트르, 사뮈엘 베케트, 알베르트 자코메티, 파블로 피카소, 코코 샤넬 등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도 카르티에 브레송의 카메라 안에서 빛을 발했다.
브레송은 단 한 번도 연출사진을 찍지 않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발견하길 원했다. 영원과 순간 사이를 여행하면서 그의 카메라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고 또 증언했다.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향한 길이었다. 그의 삶도, 카메라도, 데생도.
▲'결정적 순간'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예리한 시선으로 20세기의 격변의 현장과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진에 담았고, 자코메티, 사르트르, 카뮈, 간디 등 20세기를 주름잡은 주요 인사들의 초상사진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증언했다. 무엇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수많은 걸작 사진작품들을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세기의 눈'이며, 흑백 이미지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진미학의 거장이다. (자료도움:뜨란)
그는 ‘붓보다 빠른 도구’라고 예찬하던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고, 당시 기술로는 정확한 색을 구현해낼 수 없다고 여겨, 컬러 대신 흑백으로 포착할 수 있는 순수한 움직임이나 삶의 순간을 담아낸 사진을 추구했다. 또 촬영하는 순간은 신중하게, 그러면서도 예리하게 포착해야 하기 때문에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았고 최대한 자신이 눈에 띄지 않게 했다.
그가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진술뿐 아니라 상황을 연출하지 않고 진실성을 담아 현실 그 자체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 철학은 ‘결정적 순간’이라는 표현으로 극대화돼 현대 사진작가들의 기준점이 됐다는 평가다.
❐ 예술의 정신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 휴머니스트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에는 이처럼 삶의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해 심오한 시선을 대중에게 전했던 카르티에 브레송 외에도 세상을 진정 아름답게 바꾼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방송작가이자 문화기획자인 지은이 박나경이 국내 한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인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소개한 100여 명의 인물들 가운데서 선별한 예술가 12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책은 문학, 미술, 사진,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이 이뤄낸 업적만을 가려 뽑아 보여주는 형식이 아니라, 전기와 평전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식 없는 민낯을 담백하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소개한다.
책을 살펴보면, 불멸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건축의 사제 안토니 가우디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전차 사고 당시 주머니에 땅콩과 건포도 몇 알 뿐 신분을 알 수 있는 어떤 증표도 지니지 않아 한동안 병원에서 행려병자로 방치됐다.
몽마르트르에서 툴루즈 로트렉이 그림만큼이나 열중했던 것이 있었다. 술과 댄스홀이었다. 그는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샤 누아르’와 샹송가수 브뤼앙이 운영하는 ‘르 미를리통’에서 저녁마다 술을 마셨다. ‘물랭 드 라 갈레트’ 같은 무도회장의 열띤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럴 때면 담뱃불을 붙이고 난 까만 성냥개비를 연필 삼아 이런저런 종잇조각에다가 스케치를 하느라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로트렉은 관찰자였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에게로 향했다. 댄스홀은 웃음 뒤에 감춰진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층을 들여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비극적 운명을 예술로 승화시킨 물랭루즈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은 “내 다리가 조금만 더 길었어도 결코 그림 따윈 그리지 않았을 거요”라고 절규했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꿈꾼 색채의 마술사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는 짝이 안 맞는 양말과 신발을 직접 만들어 신고 다니는 등 독특한 패션을 즐겼다.
뮤즈에서 예술가로 비상한 현대미술의 선구자 조지아 오키프는 일흔일곱의 나이에 가로 7미터, 세로 2.5미터에 이르는 대작을 완성한 열정의 화가였다. 근원적 질문을 멈추지 않은 영상의 구도자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영화로 철학을 한 완벽주의자였고, 인간의 절대 고독을 조각한 파리의 보헤미안 알베르트 자코메티는 작업실의 먼지조차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순수한 감성의 예술가였다.
또 의식의 흐름을 탐구한 20세기 문학의 모더니스트 버지니아 울프는 비록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보여준 여성으로서의 치열한 자의식과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미시시피 강은 마크 트웨인에게 문학의 뿌리이자 학교였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도 바로 미시시피 강에서 나온 것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미시시피 강의 뱃사공들이 쓰던 옛말인데 ‘트웨인’이란 둘을 뜻했다. 수로 안내인들이 조타수에게 “마크 트웨인!”이라고 외치면 ‘물의 깊이가 트웨인, 즉 두 길인 3.7미터이므로 지나가도 좋다’는 의미였다. 배가 지나가기에 안전한 수심, 마크 트웨인. 그는 기자로 일하던 1863년부터 이 말을 자신의 필명으로 사용했다.
이와 함께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그린 가장 미국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 피아니즘의 황홀경을 선물한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자유와 모험의 세계를 항해한 작가들의 작가 마크 트웨인, 너무나 매혹적인 첼로의 별 자클린 뒤 프레의 삶 역시 우리의 가슴에 열정과 창조, 몰입과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깊이 각인시킨다.
책은 우리에게 각박한 생존의 문제를 떠나 잠시나마 예술의 풍요로움으로 일상이 충만해지는 특별한 시간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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