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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석학이 해부하는 '문화의 진화'
    문화 2013. 4. 9. 08:14

    [컬처 쇼크]


    세상을 움직이는 학자, 사업가, 예술가, 기술자들이 모여 학문적 성과를 나누고 지적 탐색을 펼치고 있는 엣지재단.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는 창립자 존 브록만이 그동안 엣지의 지적 성과를 담은 인터뷰, 기고문, 강연문 등의 글을 편집해 마음, 문화, 생각, 생명, 우주의 다섯 분야로 집대성한 것이다. <컬처 쇼크>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우리 시대 문화의 가장 첨예한 쟁점과 첨단 지식을 다룬다.


    언어와 학문, 예술, 제도, 테크놀로지, IT 등 인류가 만들어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인 문화는 인류가 가진 가장 폭발적인 힘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문화 변화의 속도와 영향력이 빠르고 광범위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세대가 가장 첨예하게 던져야 할 질문, 즉 ‘문화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그로 인해 우리의 삶과 사유방식은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우리는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문화’를 해부대 위에 올려놓는다. 이어 철학, 미학, 생물공학, 인지과학, 진화심리학, 복잡계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석학들의 문화연구와 첨단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뜨거운 문화 쟁점들을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컬처 쇼크> 재레드 다이아몬드 외 지음 , 존 브록만 엮음, 강주헌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총, 균, 쇠>의 저자이자 인류학과 지리학 분야 석학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인지과학과 철학 분야의 담론을 이끄는 대니얼 데닛, 대중음악가이자 문화이론가 브라이언 이노, 복잡계와 첨단기술 경제학의 대가 윌리엄 브라이언 아서, 게임이론의 선구자인 카를 지그문트, ‘가상현실’ 개념의 창시자이자 IT이론가인 재런 래니어, 소셜 네트워크의 전염 효과 연구로 유명한 하버드의대 교수 니컬러스 A. 크리스태키스 등 다양한 분야 석학들의 최신 문화 연구의 핵심과 흥미진진한 첨단지식이 이 책에 담겼다.


    우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왜 어떤 사회는 재앙적 결정을 내리는가’에서 사회 붕괴와 존속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화요소로서 ‘집단의사결정’에 주목한다. 그는 집단의사결정의 실패로 사회가 몰락한 사례, 예컨대 이스터 섬 주민의 삼림파괴와 폐망, 가뭄에 대처하지 못한 마야 문명의 몰락, 외래종인 여우 번식을 방치해 토종환경을 파괴당한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사례 등을 분석해보고,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집단의사결정의 4단계 로드맵을 그린다.


    즉, 사회가 문제 예측에 실패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 후에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문제를 인지했더라도 문제 해결의 시도에서 실패한 경우,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의 순서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사회가 범하는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바로, 문제를 인지했더라도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경우다. 일례로,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개개인에게 합리적이지만 결국 집단과 타인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과 행위가 만연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열대우림지역 상당수는 다국적 목재회사들이 단기간 임대한 곳이다. “이 목재회사들은 임차료를 내고 빌린 땅에 있는 나무들을 완벽하게 채벌해야 최상의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목재회사들은 말레이반도, 보르네오, 솔로몬제도, 수마트라의 숲을 차례로 파괴했고 지금은 필리핀의 숲을 파괴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쁜 결과가 다음 세대에게 떠넘겨지지만, 다음 세대는 이런 결과에 대해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고 불평할 수도 없다.” 파괴와 몰락의 징후를 알면서도 개인과 당장의 이익을 위해 그 부담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처럼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몰락을 자초하는 과거 사례를 거울삼아 현재의 문제를 조망하고, 미래를 아우르며 균형 있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독려한다.


    ❐ 음악은 어떻게 인간의 가장 큰 문화유산이 됐을까


    진화론자인 나는 예술작품을 지금으로부터 500년 후에도 다시 보고 듣고 읽게 만드는 특징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그 특징들을 찾아내고 싶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면, 내 생각에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의 작품들은 500년 후에도 사랑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르놀트 쇤베르크, 특히 그의 무조(無調)음악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스티븐 핑커가 격찬하는 예술철학자이자, 미디어활동가인 데니스 더턴은 ‘예술과 인간 현실’에서 예술이 철저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후기구조주의의 관점을 반박하고, 문화예술이 진화론적 적응의 산물인 동시에 문화적 산물의 혼합물임을 강조한다.


    더턴은 문화예술이 문화권마다 다르며, 다른 문화권의 예술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후기구조주의의 미학적 담론이 만들어낸 미신이 무려 40년간이나 우리 머리를 잠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문화 차이를 얘기할 때 곧잘 회자되는 내용인 ‘에스키모에게는 눈(雪)을 가리키는 단어만 500개가 있다’는 얘기를 비롯해,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르 연주자인 라비 샹카르가 샌프란시스코 연주회에서 시타르를 10분간 조율하고 나서 청중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청중들이 프로그램의 첫 곡 연주를 끝낸 줄 알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모두 그런 맥락에서 생겨난 도시 괴담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문화의 보편성과 진화를 염두에 두고, 앞으로 500년 뒤에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을 문화예술 작품이 무엇인지를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의 미술작품과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조(無調)음악을 비교해보며 추측한다. 그리고 전자는 여전히 사랑받겠지만, 인간의 본성인 음열과 멜로디를 파괴하는 무조음악의 생존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지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음악의 진화’를 ‘밈(meme)’이라는 문화모방단위로 설명해낸다. 그에 따르면, 음악은 유전적 적응도라는 이익을 고려해볼 때 쓸모없는 행위다. 소중한 에너지가 낭비되고, 사냥감이 놀라 달아나게 만들 수도 있는 행위다.


    그런데 음악은 왜 사람들 사이에서 모방과 전달이 거듭돼 인류의 가장 큰 문화유산 중 하나로 자리잡았을까. 영농법, 조리법, 언어습관 등등 다양한 문화요소이자, 사람과 사람 간의 모방단위인 밈은, 마치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뇌를 숙주로 스스로를 복제하며 퍼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뇌를 차지하기 위해 밈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때 밈이 선택되는 조건은 숙주인 인간의 유전적 적응도가 아닐 수 있고, 그저 기생자에게 유리하며 숙주에게는 무의식적인 욕망해소에 가까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공동체가 다양한 음악적 밈들에 물들기 시작한다.

     

    대닛은 사람들이 밈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이유도 고찰한다. ‘밈이 기생하는 뇌’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정신을 설명할 경우 인간의 창조력이란 소중한 전통이 훼손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밈’을 부정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의 창조력을 밈으로 설명해야만 인간 정신의 산물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숙주인 인간은 뇌가 발전하면서 밈의 터전으로서 뿐만 아니라, 명민하게 밈을 선택하고 조율하는 행위자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위대한 작곡가 바흐는 밈의 관점으로 볼 때 뛰어난 밈육종가이자, 밈공학자로 해석된다. 그는 칸타타라는 유럽의 성가양식, 즉 이미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은 밈들을 대상으로,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무마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밈변종을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영국의 대중음악가이자, 문화이론가인 브라이언 이노는 ‘포괄적인 문화 이론’에서 그동안의 거의 모든 예술사가 ‘어떤 대상물이 다른 대상물보다 본질적으로 더 아름답고 더 의미 있으며, 어떤 대상물은 본질적으로 가치와 중요성과 의미를 지닌다’는 가정 하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노는 새로운 문화 이론에서 대상물의 가치와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과학에 대해서는 담론과 이론이 활발하게 생산되지만, 문화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문화적 논의와 담론, 이를 모두 포용해낼 수 있는 포괄적인 문화이론과 학계와 대중들의 적극적인 문화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책은 우리 시대 변화의 핵인 IT와 그 파급효과에 대해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정치 및 IT 평론가로 유명한 에브게니 모로조프와 클레이 셔키는 ‘디지털 파워와 그 반론자들’에서 IT시대 권력의 실체와 힘은 어디에 있는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독재권력의 검열수단인지, 자유민주주의의 도구인지를 주제로 대담을 벌인다.


    모로조프는 미국 정부가 ‘구글과 트위터’를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생각해 국무부 직원의 해외 순방길에 구글과 트위터의 간부를 대동하는 사례, 구글이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과 협력하고 있는 점과 지메일의 검열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인터넷이 국가권력을 뒷받침하는 역할 혹은 독재국가의 프로파간다 전파 역할을 맞게 될 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클레이 셔키는 독재국가의 검열기구이자 프로파간다 전파의 창구로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역할보다는, 민중과 민중 간의 소통의 창구로서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리고 독재정부가 실질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민중들 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커뮤니케이션 시설의 노후화를 방치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각각 논의돼왔던 문화연구 지식의 핵심을 통섭해, 우리로 하여금 문화 진화의 여러 단면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주연 기자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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