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ㅣ송준 글 정형우 사진ㅣ동녘 펴냄 ≪바람의 노래≫는 송준이 깊고 진중한 사진작가 정형우와 함께 한 이 시대 우리 예술인과의 대화를 모아놓은 책이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송준이 이들 내면의 속 깊은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작업에 대한 뒷이야기를 이야기한다.

 

송준은 “예술은 어렵거나 독특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요,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유희도 아니다. 이들이 보여 주는 속내처럼 진심이 묻어나는 삶 자체야말로,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여 주는 작업과 작업실 풍경은 고스란히 우리의 인생으로 이어진다.

 

예술가라기보다는 연예인에 가깝게 여겨졌던 가수 이상은, 그는 브라운관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녀의 내면을 엿본다. ‘담다디’로 잘나가던 어느 여가수의 고충은 지금 아이돌 가수들이 겪는 어려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을 터.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겪은 후에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꾸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는 역시 이 시대의 프리마돈나다.

 

비교적 대중들에게 친숙한 소리꾼 장사익의 ‘비 내리는 고모령’ 작곡이야기는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찔레꽃’의 노래가 미국의 한 공연장에서 울려 퍼졌을 때 관객석에서는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들어도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린다.

 

대중에게 글쟁이로 알고 있는 이외수는 이 책에서 만큼은 선묵화가로 변모했다. 긴 백발을 늘어뜨린 이외수는 평소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감각적인 책들을 많이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그림 작업도 많이 남겼다. 젓가락에 먹물을 묻혀 그려낸 그림들 하며, 화선지 위에 붓으로 쓱쓱 그려낸 작품들은 그의 주특기인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외에도 그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춤꾼 조갑녀, 이매방, 하용부의 공연 사진이 눈이 들어온다. 사진에서 빠져 나와 어깨를 들썩이며 춤판을 벌일 것만 같다. 특히 조갑녀의 나이를 잊은 춤사위는 감동을 넘어서 웅장미마저 느껴진다. 또 본인의 이름으로 책을 14권이나 찍어낸 사진가 신미식의 ‘때를 기다렸다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사진철학은 뒤에 나오는 사진가 김홍희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그것과 대비되기도 한다. 판화 외길을 걸어온 남궁산이 대한민국의 쟁쟁한 작가들에게 만들어 주었다는 장서표도 인상적이다.

 

지은이는 22인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에 대해 “한길 외곬으로 평생을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들이 우리 예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 주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ㅣ한주연 기자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