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400여 년 전 일본에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센고쿠 3대 영웅 가운데 한 인물이다. 천재적인 지략을 통해 천하를 움켜쥐었으나 부하의 반란으로 스스로 자결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노부나가, 일개 비천한 농민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을 통일한 히데요시. 그들과 달리 이에야스는 요시모토의 보호 아래 인질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외에는 평범 그 자체였다고 역사는 전한다.

 

기다림의 칼ㅣ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ㅣ박선영 옮김ㅣ21세기북스 그런 이에야스가 일본의 국민적 영웅으로 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 지나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에야스는 평판도 좋지 않았고 인기도 없었다. 더욱이 ‘너구리 영감’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검은 뱃속을 가진 음흉한 사나이로 오해받고 있었다. ≪기다림의 칼≫은 이에야스의 이러한 오명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벗겨내고 평범함 속에 비범한 능력을 갖춘 지도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보통 사람은 따를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배경을 잘 살펴보면 이에야스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첫째 이에야스는 자신보다 힘이 강한 자에게는 당연히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은 날에는 이마가와를 따르고 이후 오다에 복종했으며 이제는 히데요시를 따른다. 그리고 일단 따르기로 했다면 그에 맞게 상대방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그런 만큼 자기보다 약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일종의 증오심마저 느꼈던 듯하다. 요도기미와 히데요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에야스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력하다고 판단하는 한 동요하지 않았다. 이에야스가 문제 삼는 것은 오로지 무력뿐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전란의 세상,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사람의 뼈를 장작삼아 불태우는’ 세상에서 이에야스는 일본의 무장으로서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며 무사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전투력으로 일본 전국을 평정했다. 그는 광기에 가까운 노부나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사내였다. 히데요시의 정치적 계략과 모략이 난무하는 전장 속에서도 전통적인 무사로서 사무라이의 자존심을 지키며 실질적인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지은이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이에야스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선 평생 긴장을 푼 적도 기세등등하거나 의기양양해 본 적도 없는 그의 성격대로 언제나 전투에서는 계략과 모략보다는 정공법으로 적을 공략했다. 특히 야전의 지휘 능력을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모략만 뛰어난 인간은 참모는 될 수 있지만 천하는 가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가이도(海道) 제일의 활잡이’로서 명성에 흠이 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는 무력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력이라는 신념 아래 화폐 제도를 확립한다. 이는 절묘한 재무 능력을 바탕으로 한 정책이었다. 그는 화폐를 쥐는 자가 천하를 거머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던 지도자였던 것이다.

 

또한 명예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외교 전략으로 네덜란드와 국교를 개시하고 류큐, 즉 오키나와의 영유권 확립과 조선과의 강화를 끌어낸다. 흔히들 일본인은 외교에 서툴다고 하지만 이에야스는 전혀 달랐다. 흔히들 이에야스하면 쇄국을 떠올리지만 그는 역사상 가장 적극적인 개국주의자였고 근대적인 경제외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뛰어난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에도(훗날 도쿄)의 건설과 쇼핫토의 공포, 그리고 막번(幕藩) 체제를 확립한 것도 눈의 띈다. 무법천지였던 센고쿠 시대를 여자 혼자 몸으로 여행할 수 있고, 방랑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굽은 허리로 일본 전역을 방랑할 수 있는 법치 사회의 기초를 닦은 장본인은 바로 이에야스였다.

 

:::이에야스가 당시 사람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에야스의 이런 재능을 싹틔우고 자라게 한 힘은 무엇일까?

우선 이에야스는 ‘가이도 제일의 활잡이’로 전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지휘자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에야스가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스스로 이에야스의 무공과 지휘 능력에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다음은 통치력과 부하들을 이끄는 통솔력이다. 이것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간토 영지 이동과 또 새로운 봉지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지배권 확립 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세 번째가 그의 재정 능력이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 사람 중에 이에야스는 화려한 것을 싫어했으며 가장 검소했다. 구두쇠나 다름없었지만 세 사람 중에서 재정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는 이에야스였을 것이다. 이 능력 또한 결코 과시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은연중에 주위에 영향력을 미쳤다. 조선인 포로 강항의 이에야스 평가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을 키운 바탕이 바로 그의 ‘학문’이었다. 그는 결코 당시의 교양주의적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배워야할 것과 그것을 배우고 또 활용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바로 그것이 그의 특성이었으며 천재적인 점이었다.:::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한 바로 다음 해, 이에야스는 쇼핫토를 공포한 이듬해에 7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센고쿠 시대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고 법치 체제의 기본을 확립한 후, 마치 이제 자신의 임무는 다했다고 선언하듯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인생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부단하게 걸어온 여정이었다. 그의 인생을 보상하기라도 하듯이 일본은 ‘도쿠가와 300년의 평화’가 이어지고 자손이 15대까지 쇼군직을 지키게 된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가 있으면 죽여 버리고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가 있으면 울게 하려고 노력하고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새가 있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

 

이 유명한 일화는 오늘날 이에야스의 초인적인 자기 절제에서 나오는 인내와 기다림의 자세를 대변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면모 외에도 정치가로, 경제인으로, 무장으로, 의리의 사나이로서의 모습을 통해 그를 재평하는데 집중한다. [출처=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