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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경제 2010. 7. 11. 16:50
[출처=지데일리] “우리는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된 것처럼 ‘믿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결국 소수만이 선택하기(choosing)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기(risking)를 한다. 우리는 마치 자유로운 듯이 살도록 강요당하며 살아갈 뿐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리먼브라더스 부도 등 금융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정말로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었을까? 잘 알려진 대로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들만이 위기 이전부터 금융붕괴를 경고해온 것은 아니다. 2000년 이후 계속돼온 반세계화시위 역시 끊임없이 금융 신자유주의의 위험에 대해 외쳐왔다.
그러나 이들이게 돌아온 것은 의도적이고 폭력적인 탄압과 함께 은폐의 움직임 뿐이이었다. 게다가 막상 위기 이후 문제를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된 거대 금융기관들은 비록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난을 받기는 했어도 오바마정부의 구제금융안을 통해 손실을 입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됐고, 이에 따라 이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위험에 노출된 이들은 금융붕괴로 인해 직업과 저축을 잃은 수많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맹목적인 운명처럼 전가된 위험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사상가’로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이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정책, 그에 대한 좌우파의 혼란스러운 입장과 태도 등을 특유의 도발적 시선으로 진단한 책이다.
지젝은 이 책에서 21세기 서두에 벌어진 심상치 않은 두 가지 세계사적 사건, 즉 9․11테러와 세계금융위기를 맑스의 유명한 경구를 차용해 각각 비극과 희극으로 비유하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금융위기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또 사태에 대한 급진주의적 입장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본다.
지은이는 “오늘날의 시대는 끊임없이 자신을 탈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선포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이러한 부정은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이데올로기에 깊숙이 파묻혀 있다는 데 대한 궁극적 증거를 제공할 뿐”이라고 말한다. 지은이가 일례로 든 마틴 루서 킹에 대한 자유주의적 전유는 전형적인 이데올로기 공작으로, 즉 마틴 루서 킹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은 감동적인 수사로만 남아 있을 뿐 정작 그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는 아무도 알려고 들지 않는다.
최근 그리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금융붕괴는 세계적 차원에서 아직도 진행중인 현재의 위협이다. 이는 힘없는 자들을 끝없이 배제하고 착취하는 현실로 나타난다. 그러나 지은이는 현재의 위기가 변혁의 호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수적 질서를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금융위기가 발휘하는 일차적 효과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의문이라기보다 더 심도있는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초석을 닦는 것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역사의 ‘객관적 경향’을 따르거나 역사적 필연성의 기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연을 거부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들은 바로 우리라는 점을 깨닫고 대타자란 없다는 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출구 없음’의 문제, 즉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패권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주체의 전면적 재무장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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