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지데일리] 장애 자녀를 가진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집에서 보살피려고 한다. 함께 하는 것이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만일 부모가 갑자기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 자녀보다 먼저 죽는 경우도 있다. 장애 자녀를 돌보는 것은 대부분 부모의 몫이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가 알아야 할 장애자녀 평생설계ㅣ페기 루 모건 지음ㅣ전미영 옮김ㅣ부키 펴냄 ≪부모가 알아야 할 장애 자녀 평생 설계≫는 부모가 병이나 사고로 장애 자녀를 돌볼 수 없게 되더라도 자녀가 잘 지낼 수 있도록 사전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지은이 페기 루 모건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간다. 그때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발달장애와 정신장애를 가진 아들 빌리 레이를 생각하며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누가 아들을 돌봐 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이 돌봐 준다고 해도 자녀에게 어떤 방식이 통하는지, 어떻게 해야 자녀가 안정감을 느끼는지 부모만큼 알 수는 없다. 당장 돌봐 줄 이가 없다면 자녀는 부모를 잃었다는 깊은 상실감과 함께 낯선 시설로 보내져 혼돈과 불안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지은이는 오랫동안 장애인 신탁 업무에 종사하면서 많은 장애인 가족을 접했고, 그 자신이 실제로 중증복합장애 아들의 평생 설계를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자녀의 평생 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돌봐 줄 수 없을 때에도 자녀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정신적 물질적 여건을 일찍부터 준비하자는 것이다.

 

지은이가 자녀의 평생 설계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다. 아무리 서류를 열심히 준비하고 물질적 환경을 잘 마련한다고 해도 자녀가 느낄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됐을 경우 평소 가까이 지내는 친구나 이웃이 대신할 확률이 높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가 다른 사람들과 취미 활동이나 종교 활동을 같이하고 교류하면서 인간관계를 다지도록 일찍부터 신경 써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지은이는 만일 자녀가 언어로 의사소통이 어렵다면 친구들의 사진을 담은 전화번호부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통화하게 하고, 친구를 자주 집으로 초대해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을 당부한다. 이와 함께 사진첩이나 책 같은 형식으로 자녀의 개인사를 담은 ‘이야기 자료’를 만들어 두면 나중에 자녀를 돌봐 줄 활동보조인이나 전문가들이 자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녀가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친구에게 적절한 간격으로 전화를 걸도록 한다. 탁구를 치거나 영화를 보러 가자고 약속을 잡게 하거나 정해진 날짜에 그런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부모가 나서서 틀을 잡아주는 것도 좋다. 먼저 자녀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화번호부를 만들자. 자녀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친구들과 가족 목록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작성하고, 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써 둔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보고 싶을 때, 혹은 카드를 쓰려고 할 때 자녀는 그림이나 사진을 가리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자녀는 이야기 자료를 보여 주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고,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또 전문가들이 자녀의 선호와 능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이 당신의 자녀를 고유한 인격체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자녀의 삶에 관한 기록은 자녀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다.:::

 

특히 지은이는 이 책에서 직업과 주거 프로그램을 살펴볼 때는 의료 혜택이나 연금 수급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턱없이 부족한 급여를 받는데도 직장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 혜택이나 연금 수급권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이런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포기하고 집에서 지낸다. 이른바 ‘빈곤의 덫’에 갇히는 것이다.

 

만약 자녀에게 알맞은 직업 프로그램이 없고, 그 프로그램에 들어갈 경우 연금 수급권을 잃는다고 하면 자원봉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은이는 자녀의 적성에 맞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연금 수급권도 유지할 수 있다고 알려 준다. 유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액수가 많지 않아도 재산 상한선을 넘기면 정부 지원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그다지 액수가 많지 않은 보험증권을 자녀에게 넘겼는데 그 때문에 자녀의 재산이 상한선을 초과해 의료 혜택이나 다른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된 규정도 지역에 따라 달라서 자녀가 초과분을 모두 써서 재산이 다시 상한선 아래로 내려오면 바로 서비스 수급권을 다시 주는 곳도 있고, 대기자 명단에서 한참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다.:::

 

이럴 때는 유산을 신탁하면 정부 지원도 유지하고, 자녀가 돈 관리를 잘못해 곤란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 정부의 의료 혜택이 못 미치는 부분을 신탁에 명시해 지원받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 특별부양신탁에 가입하면 신탁한 재산에 대해 5억 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지은이는 장애 자녀를 집 밖으로 자주 데리고 나가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내 아이에게 익숙해져야만 장애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없을 때 공동체 사람들이 자녀의 보호막이 되어 줄 수 있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개선된다. 부모가 지역 공동체에 자녀를 참여시키는 것이야말로 자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안전장치이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인권운동인 셈이다.

 

:::내가 아들을 위해 만든 삶은 아이를 공동체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었고, 구경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빌리 레이를 장애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내게 큰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중증복합장애인인 아들의 성년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직업과 주거 프로그램을 알아볼 때 확인해야 할 사항부터 친구·변호사·대리인 등 실질적으로 자녀를 지켜 줄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법, 유언장 작성과 유산 신탁에 이르기까지 장애 자녀의 부모가 알아야 할 내용을 꼼꼼하게 짚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