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으로 사스와 조류 독감, 신종 플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항균 스프레이와 손소독제 광고도 많이 늘어난 적이 있다. 이들 광고에서는 세균 없는 청결한 환경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소개된다.


사진_감염ㅣ제럴드 N. 캘러헌 지음ㅣ강병철 옮김ㅣ세종서적 펴냄 그러나 면역학과 병리학의 권위자 제럴드 캘러헌 박사는 깨끗한 환경이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럴드 박사가 지은 ≪감염≫은 우리 몸을 감염시키는 미생물들 중 대부분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면역 체계를 발전시키면 병원균도 그에 대응해 스스로를 진화시키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질병’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균 같은 미생물에 대한 오해와 불안을 이렇듯 말끔히 제거해주는 이 책에서는 우선 미생물이 우리 몸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도록 일깨운다. 또 지난 세기 동안 각종 감염성 질병을 구축함으로써 미생물계를 정복했다고 생각해온 인간의 오만함에 일침을 놓는다. 사스, 탄저병, 광우병, 에이즈, 조류 독감 등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거나 앞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미생물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지은이는 “우리 몸의 99퍼센트가 세균”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 게놈의 서열 분석 결과이며, 우리 몸이 보유한 세균 유전자의 수가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물려준 유전자의 수를 압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한다. 이 추가된 세균은 우리 스스로 흙과 접촉하면서 혹은 부모님이나 연인,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받아들인 것으로, 이들이 지금 우리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다.


지은이는 또 “미생물은 사람을 창조하며, 건강한 미생물은 더욱 건강한 사람을 만든다”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만 해도 감염병의 특징은 변한다고 주장이다. 또 지구에서 미생물에 필적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지구의 환경에 잘 적응한다고 이야기한다.

 

미생물이 인간의 몸속에서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파스퇴르가 입증한 이래 우리는 몇몇 미생물(병원균)들의 위협을 두려워해 세상을 멸균하는 데 몰두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만했다. 즉,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물론, 우리 자신마저 이미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감염돼 있기 때문에 세균 감염에 따른 질병을 완치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미생물들을 쳐부수는 대신, 그들과 공생하며 조화를 이룰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은이는 충고한다.


이와 함께 지은이는 각종 전염병이나 감염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미생물만이 그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도 다른 인간들이 병원균에 감염되도록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무지와 제약회사들의 횡포는 눈여겨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은이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아프리카를 꼽는다.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을 근거로 유럽연합 대사 가이 리켄은 DDT를 추방해 새들을 보호하든가 유럽연합과의 무역을 포기하라고 우간다 정부를 협박했다. 하지만 우간다의 한 어머니는 이렇게 항변했다. “새들 이야기는 하지도 말아요. 체내에 DDT가 약간 축적되는 것이 (모기에 의한) 말라리아로 아이를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하지 마세요. 모유에서 DDT가 분비되는 게 제일 큰 걱정거리라면, 아프리카인들은 모두 기쁨에 겨워 춤을 출 거예요.” 아울러 말라리아모기를 막을 방충망을 살 수 없고, 에이즈에 오염되었을지 모르는 주사기와 바늘마저 다시 써야 하는 곤궁함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다.

 

큰돈과 명예가 걸린 신약의 특허권을 놓고 분쟁하는 제약회사들과 연구소들도 이런 상황을 심화시킨다. 질병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이용하는 정치인들과 종교인들, 언론인들도 원인 제공자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진정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려운 이웃을 구하고 싶다면, 그들의 무지와 가난이 먼저 해소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청결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기생충과 세균을 쫓아내는 것은 영원한 벗을 추방하거나 수백만 년 동안 살아온 배우자와 이혼하는 것과 같다고 충고한다. 일례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대장균에 오염된 식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벌레에 물리거나 세균에 노출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미생물은 적이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그 적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배워왔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구해줄 존재는 바로 벌레들과 세균들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없다면 동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지은이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