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지데일리] 2009년 말 세계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킨 영화 <아바타>. 이 작품은 ‘3D’라는 기술, ‘SF’라는 장르, ‘멀티플렉스’라는 공간, ‘사회주의적 인간’이라는 주제, ‘정신의 이동’이라는 인문학적 테마 등 다양한 각도에서 비춰졌다. 특히 영화라는 매체의 새 시대를 열어젖힌 이 작품은 수많은 인문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사진=아바타 인문학ㅣ최정우 외 지음ㅣ자음과모음 펴냄 ≪아바타 인문학≫은 인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철학과 문학, 영화, 경제, 디자인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휴머니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생태주의와 결합한 테크놀로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해 말한다.

 

우선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된 박우진의 글은 이 영화가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그 자신의 일부로 녹여냈다는 논의를 펼친다. 더불어 영화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3D 기술을 <해운대>와 <국가대표>라는 한국 영화의 지형 속에서 다시 살핀다. 기술보다는 내러티브를 우위에 둔 한국형 블록버스터와의 단절을 선언한 <해운대>는 곧 <아바타>의 시대와 통한다. 이로써 한국 블록버스터는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등의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미래의 지형을 보여주게 됐다는 평이다.

 

지은이 서정아는 기존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몸과 몸 사이의 이동이라는 영화의 SF적 소재에 주목한다. ‘몸의 공간상 이동’을 다룬 <더 플라이>와는 달리 <아바타>에서는 ‘의식의 공간이동’을 그린다. 이는 인간과 나비족, 곧 SF의 주된 소재인 나와 타자의 문제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3D 기술을 통해 영화 속 인물의 의식이 관객의 몸으로 이동, 확장하는 기능을 한다. 이로써 관객이 이미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먼저 관객에게 다가오게 된다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김지현은 SF라는 장르에 흔히 차용되는 가정들을 통해 영화 <아바타>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한계는 무엇이며, 또 무엇을 실패했는지를 말한다. 아바타라는 새로운 육체로 갈아탄다는 설정에는 아무런 갈등이나 긴장감이 없고, 유기적 네트워크로 모두 연결돼 있어도 나는 타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승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영화에는 윤리의식이 부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박원익은 영화 <아바타>가 <300>에 이은 ‘할리우드 좌파’ 영화라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보수 체제의 근본인 가족 서사를 탈피했다는 사실을 든다. 영화의 출발은 좌파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타종족 연인과 사랑에 빠져 동족을 공격한다거나, 인간과의 싸움에 대비해 ‘전 인민의 무장화’를 선언하는 내용 등은 충분히 좌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영실은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과의 비교를 통해 영화 <아바타>가 세계 종말 너머의 미래를 꿈꾸고 있음을 말한다. 삶 자체가 재난인 오늘날, 영화가 그려내는 판도라 행성의 자연은 생생한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불구가 된 주인공이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듯, 현대인은 야생의 삶을 통해 구원을 꿈꾼다.

 

박해천은 영화에 등장하는 첨단 장비를 둘러싼 영화 내적, 외적 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가 베트남전을 복기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제임스의 카메론의 전작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반복돼왔던 베트남전의 기술적 아이템들은 이제 성장의 임계점에 도달한 기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무차별적인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문학적 영화 보기’라는 그림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 등은 실제 일상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러한 스토리나 장면 등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감각과 사유는 인문학(人文學)이라는 것이 영화와 모종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특히 영화의 새 시대를 열어젖히며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으로 다양한 글쓰기의 가능성을 도발한 <아바타>를 파헤치면서 오늘날의 영화 산업이 품을 수 있는 정치적인 것의 한계에 대해 글쓰기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