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는 산업자본주의가 가져온 병폐인 기후온난화와 자연 파괴, 기업적 세계화, 토착문화 말살, 생명 경시와 인권 침해, 부의 양극화, 자본을 위한 전쟁 등으로 속속들이 병들어 회복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지경에 이르렀다.

 

사진=축복받은 불안ㅣ폴 호켄 지음ㅣ유수아 옮김ㅣ에이지21 펴냄 과학자들은 환경오염이 너무나 심각해 몇 십 년 안에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쓸 수 있는 자원이 바닥나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몰고 온 기업적 세계화가 결국은 세계를 더욱 궁핍하게 만들고 극히 소수의 자본가들에게만 이로운 제국을 만들고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이와 함께 강대국의 정치이데올로기와 결탁한 거대 기업자본은 경제적 부라는 달콤한 미끼로 지구상의 어디에선가는 늘 전쟁과 폭동이 끊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 무분별한 자연자본 착취로 인해 지구 환경이 회복이 어려울 지경으로 만들고 있다.

 

:::이 운동에 적합한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운동을 구체적으로 조직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했지만,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복잡한 조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름 짓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 운동과 상관이 없는 외부인들은 무력한 운동일 뿐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런 평가도 이 운동의 성장을 막지 못한다. --- 수년 동안 여러 현상들을 연구하고 이 운동을 구성하는 단체들에 대한 데이터를 동료들과 함께 수집해본 결과, 이 운동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사회운동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도 이 운동의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할뿐더러 이 운동의 작용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신비롭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주 굉장하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응집력 강하고 유기적인 단체들을 자발적으로 조직해서 변화를 목표로 헌신한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미래에 대해서 비관적인지 낙관적인지를 물어오면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오늘날 지구상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듣고도 비관적이지 않다면 정확한 데이터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고, 이 ‘이름 없는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도 낙관적이지 않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폴 호켄은 강연회에서 만난 환경보호운동가들과 사회정의운동가들의 명함들을 일일이 분류해 그 규모를 추산한 후 현재 전 세계에는 100만 개가 훨씬 넘는 소규모 사회단체들이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축복받은 불안≫에서 한 번도 미디어의 주목이나 정치권으로부터 관심을 받은 바 없는 이 ‘이름 없는’ 거대한 사회운동 현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으며,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구와 인류의 밝은 미래를 예견한다.

 

폴 호켄은 현재 전 지구적인 환경과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감지하고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일어선 자들이 허울만 좋은 정치가들이나 자본가들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환경 파괴를 걱정하고 이웃의 안위를 걱정하는 의로운 마음을 가진 평범한 개인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풀뿌리 운동은 유례없이 독특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초유의 거대한 규모로 성장해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이 운동을 이루는 소규모단체들의 활동 형태는 저마다 독립적이며 국지적이고, 조직 형태는 민주적이다. 이들 단체는 환경이나 인권 등 공통된 관심사로 모여 연대한다. 그러나 권력지향적인 보수체제를 만들거나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와해되기 쉽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지만, 이를 위해 발전된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전 세계를 이어주는 인터넷과 네트워킹 기술의 활발한 보급으로 이들 단체는 서로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며 면밀히 이어져 있다.

 

이와 함께 이들 단체를 결속시키는 신념은 사상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자연론>에서 주창한 자연과 인간은 하나이며 인간은 자연에 기반을 두어야 좋은 삶, 정의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신념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까지 면면히 영속돼 왔다. 이러한 사상적 전통에 덧붙여 지은이는 오늘날 소멸해가는 토착문화가 가진 자연과 일체된 삶의 방식을 세계 복원의 밑거름으로 제시한다.

 

지은이는 “사람과 자연을 분리해 생각하는 서구문화의 인식 때문에 사회정의운동과 환경보호운동이 따로따로 생겨났고 각자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지만, 토착문화는 이 둘을 하나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고 밝힌다. 사회정의운동과 환경보호운동은 불가분인 하나의 신념을 가진 운동이고, 이 운동은 서구 산업자본주의와 시장주의 논리에서 비롯된 그릇된 세계화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환에 몸을 맡기고 타 생명체를 존중하는 삶의 진정성을 되찾는 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인간인 우리가 지구를 해치면 그 대가가 질병이나 환경 오염의 형태로 되돌아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서로에게나 다른 생물체를 대하는 방식은 사실 우리가 지구를 대하는 방식에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은이는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라고 일컫듯 지구도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할 수 있고 이 지구 환경의 보호와 치유야말로 지구에서 생존해나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파한다. 그는 현재 세계가 조장하는 혼란과 불안이 오히려 세계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이는 오히려 ‘축복받은 불안’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가 이처럼 지구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는 사회변혁의 물결이 어떠한 사리사욕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지구 환경과 사회정의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이름 없는 풀뿌리 개인들의 신념이 모여 이루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현재 세계의 부조리함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고 밝은 미래를 가꿔나갈 희망이라고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