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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감독을 계속하는 이유사회 2015. 8. 31. 14:13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나]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온 영화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영화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오시이 마모루는 최근 스칼렛 요한슨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실사판 를 비롯해 할리우드에 진출한, 몇 안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하나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나> 오시이 마모루 지음, 박상곤 옮김, 현암사 펴냄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본업은 영화감독이지만, 오래 전부터 조직 경영에 필요한 ‘승패론’에 대한 강의를 해왔다.
<공각기동대>, <패트레이버>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영화에서 찾아낸 조직 생활의 비기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군대건 기업이건 혹은 영화 제작 현장이건, 조직은 ‘인간관계’와 ‘승패론’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움직인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영화를 통해 조직론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과 같다.
그는 이 책에서 30년 동안 자기만의 분야를 구축해 조직을 이끌어온 그는 영화를 보면서 항상 승부에 대해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경청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투자자건 프로듀서건 배우건,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듣는다. 하지만 판단은 내가 한다.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들어야 할 이야기는 확실히 들어주지만 판단은 별개 문제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이 감독은 내 예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일이다. 상대방 의견을 반영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그 점은 이야기를 한 당사자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자신의 속내를 말함으로써 마음이 후련해지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는 단순히 자산의 감정을 발산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중간관리직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75쪽)
오시이 마모루에 따르면 일부 영화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마치 모자관계같이 끈끈한 007과 보스 M의 사수-부사수 관계에서부터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나선 대위가 자신의 부대와 라이언 일병 모두를 구하기 위해 펼치는 전술 등은 곧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으로 해석된다.
승부에 관한 오시이 마모루의 신랄한 지론에 ‘직장인을 위한 성공법’ 류의 판에 박힌 듯한 이야기와는 다르다. 성공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풀어내는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장그래’와 ‘오차장’ 모두를 생각하게끔 해준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 책에서 그 자신이 그간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영화를 꼽는다. 그러면 자신이 회사원 경험은 거의 없지만, 조직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든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본질의 대부분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는 직장인이 봐야 할 가장 좋은 교과서’라면서, 회사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신랄하면서도 흥비롭게 제시한다.
‘사회인의 능력이란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말한다. 이는 일정한 직장에 취직해서 일을 하거나 예술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야만 익힐 수 있다. 하지만 다들 그것을 귀찮고 내키지 않는다면 회피한다. 아닌 게 아니라 노력해서 소통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인터넷에서 제멋대고 쓰는 편이 편할 테니 말이다. 승리의 조건이 장벽을 낮추건 높이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내 말은 ‘질리지 않은 일을 하라’는 뜻이다. 아무리 해도 싫증 나지 않는 일을 찾아라. 굳이 재능을 찾으려 애쓰는 건 시간 낭비일 뿐 잘못된 방향이다. 내가 영화감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다.’(139쪽)
영화감독인 동시에 지독한 영화광이기도 한 오시이 마모루가 선정한 영화는 <머니볼>, <라이언 일병 구하기>, <007 시리즈-스카이폴>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할리우드 영화에서부터 고전영화, 그 자신이 감독한 애니메이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 등 다양하다.
오시이 마모루가 이 영화에서 주요 장면을 뽑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내용은, 직장을 다니면서 자아 실현하는 법, 조직에서의 인간관계 등 직장인에게 유용한 조언으로 이어진다.
<머니볼>을 통해 “그 어떤 개혁자도 자신의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교훈을 얻거나, 고전영화 <정오의 출격>을 보고 “목표가 없는 사람이 혹사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식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 책에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느끼고는 있지만 말로 내뱉지 못하는 이야기인 ‘지는 것이 가장 속 편한 방법이다’, ‘정면돌파만이 능사는 아니다’, ‘고민하지 않는 상사의 말은 믿지 마라’ 등의 내용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한주연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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