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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살아난 아이디어사회 2015. 10. 26. 08:59
[토레 다비드]
“그곳은 수직형 빈민가다.”
다비드의 탑이라는 뜻의 ‘토레 다비드’는 남미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중심부에 서 있는 45층짜리 초고층 건물이다. 1994년 베네수엘라에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건설이 중단돼 20여 년 째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토레 다비드> 미메시스 펴냄
토레 다비드는 처음엔 폐허였다. 붕괴나 화재는 물론 기본적인 자연재해의 위험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막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의지와 기지에 따라 재활용을 바탕으로 한 바람직하고 공간을 만들어왔다.
이곳은 자본이나 권력의 힘이 아니라, 자유로운 그들의 의지와 노력과 아이디어가 강한 버팀돌로 작용해 이뤄진 곳이었다. 이는 시민의 기본 권리를 존중하고 우선시했던 우고 차베스 정부와 그 공동체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토레 다비드는 2007년 카라카스의 집 잃은 빈민들에 의해 무단으로 점유됐다. 이후 그들에 의해 즉흥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이 만들어지거나 끊임없이 개조되면서 현재는 약 750개 이상의 가구가 살고 있는 주택이 됐다.
알프레도 브릴렘버그와 후베르트 클룸프너를 비롯한 어반 싱크 탱크라는 건축 집단은 이 실패한 개발 프로젝트 토레 다비드에서 지역 사회를 위한 실험실을 발견했다. 이 책 <토레 다비드>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한 도시의 새로운 촉매제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곳은 아이디어가 즉각 실현될 수 있고, 그 피드백도 매우 구체적이고 즉시적이기 때문에 건축가들의 실험실로는 매우 적합했다.
어반 싱크 탱크는 폐허에서 집으로 변모한 이 건물의 물리적, 사회적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2007년부터 관찰과 연구를 진행했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무단 거주 지역이 정상적인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실험과 제안을 실시했다.
무허가 수직형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건축적 구조를 면밀히 답사하는 이 책은 건축 전문 사진가 이반 반의 생동감 있는 사진들과 함께 베네수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배경을 소개한다.
아울러 토레 다비드 거주자들의 초기 점유 과정을 비롯해 필수적인 생활 기반 시설이 결핍된 상태에서 미용실, 체육실, 식료품점 등 다양한 편의 시설과 공동체 조직을 스스로 어떻게 체계화했는지, 기본적인 전기,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시설들을 어떻게 구축했는지 등을 설명한다.
2009년 베를린에 있는 무단 점유된 한 건물의 모습(출처=본문 이미지)
또한 건축가들의 텍스트와 사진, 도면, 투시도 등을 상세히 보여주면서 단순한 무허가 거주지에서 하나의 미래 도시의 표본이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의도하지 않아도 현대 건축과 도시 생활에 대해 건축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시사점이 드러난다.
무엇모다 이들 건축가 집단이 의도하는 목적은 하나로 집중된다.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비공식 정착촌, 즉 토레 다비드와 같은 무계획적이고 무형식적인 거주지에 새로운 형태의 도시 개발 잠재력을 발견하고,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의 디자인 솔루션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하라는 주문이다.
한 국가보다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토레 다비드 거주민 공동체의 원동력은 터전에 대한 절박함과 더불어 빈민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불법 점유는 정부의 압박으로 이어질 거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정치적인 목적과 상관 없이 당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는 국민들에게 거주에 관한 권리를 우선으로 했다. 물론 점유와 정착 과정 중에 모든 것이 공평하고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과 삶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으로 무력 충돌이 최소화될 수 있었고, 이런 과정에서 거주민들의 인명 피해나 경제적 손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결국은 평등한 방법으로 거주를 시작했고, 그 안에서 보통의 삶을 꾸릴 수 있었다.
이들은 일을 하고, 가족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생활과 밀접한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있다. 나아가 합법적인 거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지금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한주연 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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