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의 수단으로 탄생한 화폐가 이제는 인류 전체에 ‘빚-그물’이라는 괴물이 됐다. 이로써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됐고, 각국 정부는 금융의 먹잇감이 됐다.


사진_화폐의 종말ㅣ토머스 H. 그레코 Jr. 지음ㅣ전미영 옮김ㅣAK 펴냄 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무지한 상태로 경제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이 경제의 기반은 돈인데, 돈이 무엇인지 실제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돈의 본질이 지난 300년간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지, 어떻게 돈이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고 민주정부를 뒤엎는 정치적 도구가 되어버렸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국제 통화 체제에 내재된 성장 강박증은 그 자체가 지구 온난화와 여러 환경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화폐의 종말≫은 돈의 본질에 변화를 초래한 역사적 사건 및 진화적 변화를 따라가며 화폐와 은행업, 금융의 비밀을 파헤친다. 집중되고 정치화된 돈 권력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돈의 다음 진화 단계를 보여주며, 지역적·국가적·전 지구적 수준에서 실행할 교환 시스템의 상세한 디자인을 제시한다. 아울러 풀뿌리 조직과 기업, 정부가 취해야 할 행동과 혁신적인 실행 전략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달러와 위안화 사이의 화폐 전쟁은 오늘날의 사악한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기만적인 사기 프레임이다. 기축 통화가 달러이든 위안화이든 간에 그것이 국채라는 이름의 빚을 기반 삼아 중앙은행에서 발행되는 화폐인 이상, 금융과 관련된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인류는 빚의 폭탄을 피할 수 없고, 각국 정부는 헤지펀드 등의 이름으로 활개를 치고있는 금융 해적들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달러와 위안화 사이의 각개 전투가 아니라 화폐와 인류, 빚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금융과 빚 없는 미래 금융 사이의 보다 본질적인 전쟁이다.


‘빚-그물’에 걸려들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화폐가 없으면 빚도 없고, 빚이 없으면 예속도 없다. 하지만 문명이 있는 모든 곳에는 돈이 있고 금융이 있다. 이 거미줄보다 촘촘한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돈 없이 살 수 있을까? 책은 ‘그렇다’고 답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것이 반드시 화폐나 동전이나 플라스틱 카드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고도 이런 화폐들 없이 교환이 가능한 것은 상당 부분 현대의 과학기술과 네트워크 덕분이다. 이를 활용해 이미 돈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화폐와 금융의 사악한 기만이 강해질수록, 이 철옹성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며 마침내 화폐와 인류의 전쟁은 대단원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업가와 활동가, 시민운동 지도자 들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화폐를 만들어나가는 데 필요한 이해와 전략을 제시한다. 지은이 토머스 H. 그레코 Jr.는 “자유로운 화폐를 창설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공동체의 권한을 키우는 한편, 금융 위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하면서 민주적인 경제를 건설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