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한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라틴아메리카를 두루 여행하면서 원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끝에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혁명에 투신하면서부터 체 게바라, 또는 간단히 ‘체’라고도 불린 이 남자의 꿈은 장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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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마침내 체를 체포해 살해한 볼리비아군은 그의 시신을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볼리비아군 장교들은 대중이 경의를 표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묘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체가 실종됨으로써 체 게바라의 신화 역시 종결되길 원했다.

 

그러나 ‘체’라는 신화는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퍼졌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시인과 철학자들은 열정적인 추도문을 썼고 음악가들은 곡을 바쳤으며 화가들은 갖가지 영웅다운 자세를 취한 체의 초상을 그렸다. 자신들의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기를 열망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게릴라들은 전투에 나설 때마다 체가 그려진 깃발을 치켜들었다.

 

미국과 서유럽의 젊은이들은 베트남 전쟁, 인종편견, 사회적 정통성에 반대하며 기존 질서에 맞서 봉기할 때, 체의 저항적인 모습은 그들의 강력한 믿음을 상징하는 궁극적인 아이콘이 됐다.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은 체의 치열했던 삶과 당대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안온했던 아르헨티나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쿠바 혁명의 전장, 카스트로 정부의 권력 중심부에서부터 실패한 콩고 전투와 볼리비아 정글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은이 존 리 앤더슨은 체의 비범한 삶을 철저하게 추적한다.

지은이는 혁명으로 요동치는 라틴아메리카 현대사와 냉전의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열강들의 치열한 세력 다툼 속에서 체 게바라의 짧지만 격렬했던 삶을 그리며, 혁명, 국제적 음모, 비밀 작전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박진감 넘치게 들려준다.

 

엘살바도르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전 세계의 분쟁 지역을 취재해온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지은이는 근대 게릴라와 관련한 책을 쓰고자 자료를 모으던 1980년대부터 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체에게 매혹돼 자료 조사에 들어간 그는 곧 체의 삶 대부분이 여전히 비밀의 베일에 둘러싸여 있으며 아직 제대로 쓰이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고 전한다. 1992년 지은이는 지난 30년간 남편과 관련된 출판물을 위해 입을 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체의 미망인 알레이다 마르치로부터 죽은 남편의 전기를 집필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책에 따르면, 게바라는 자신이 삶에 있어 게릴라로서, 나아가 게릴라 지도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계속해서 증명해나갔다. 배신자들의 처형에도 앞장섰던 체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던 일기장에서 첫 번째 배신자 에우티미오 게라의 처형 순간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상황은 대원들은 물론 에우티미오에게도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32구경 권총으로 그의 머리 오른쪽을 한 방을 쏘아 문제를 종결지었다. 오른쪽 머리로 총알이 빠져나오면서 구멍이 생겼다. 에우티미오는 잠시 숨을 헐떡이다가 죽었다. 그의 소지품을 회수하려 했을 때 나는 그의 허리띠에 묶여 있던 시계를 떼어낼 수 없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차분한 목소리로 ‘야, 확 당겨서 끊어버려,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했고, 그의 소지품은 내 것이 되었다. 우리는 젖은 채 잠을 설쳤고, 나는 천식기가 있었다.”

 

이 섬뜩한 묘사는 체가 단순히 낭만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결단력 넘치는, 때로는 냉혹하기까지 한 혁명가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체는 천식이라는 치명적 장애를 극복해가며 반군 내에서 급속하게 지도자로 부상했다. 반군이 아바나로 입성할 무렵에는 체는 이미 피델 다음의 2인자가 돼 있었다. 그러나 체의 동지들 대부분이 아바나를 해방시킨다는 생각으로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체는 앞으로 펼쳐질 더 큰 투쟁을 생각하고 있었다.

 

체는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이 완전히 자리 잡게 하는 데 매진했지만,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와 제3세계 전체의 혁명을 꿈꿨고, 무엇보다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혁명을 일으키길 원했던 것이다. 이에 체는 아르헨티나 원정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기에 이른다.

 

체는 먼저 선발대를 보냈다. 선발대가 자리를 잡으면 자신이 뒤따라 들어갈 계획이었다. 전직 저널리스트였던 마세티를 사령관으로 한 원정군은 체코, 알제리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들어가 살타에서 게릴라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살타 원정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1965년 4월, 체는 남아메리카 대신 혁명의 성공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이던 아프리카의 콩고로 향했지만, 콩고 원정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체 자신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쿠바에서 체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는 언제나 궁극적으로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체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볼리비아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만났다.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1966년 11월 볼리비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이 책은 자유분방하고 개인적이었던 한 젊은이가 열정적인 이상주의자이자 차가운 혁명적 인간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