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더 이상 시대를 아파하지 않는 시대.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최성각은 본업인 소설이 아니라 산문과 행동으로 시대를 아파해왔다. 


그의 글에는 늘 ‘환경’과 ‘생명’,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은 이런 최성각의 글이야말로 바로 ‘문학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꼭 소설과 시를 써야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인식과 실천 위에 씌어진 글들’이 바로 문학이고, 지금 이 땅에서 가장 필요한 글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는 그동안 최성각이 써온 서평들을 묶은 것으로, 단순한 책 속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다. 아울러 우리 시대의 삶의 모습이 녹아 있는 사회비평집이기도 하다. ‘서평집’을 표방하고 있지만, 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는 ‘문학책’이며, 이 시대의 환경, 생명사상이 집약돼 있는 ‘사상서’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우선 최성각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는 글을 볼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취방에 엎드려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청춘의 시절에 읽었던 책들이 묶여 있다. 대학생 시절, 광산촌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읽은 헨리 조지의 <빈곤에서 벗어나는 길>, 이태준의 <밤길>,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에 얽힌 이야기는 곧 우리의 암울한 현대사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행위는 곧 저항이기도 하고, 시대에 참여하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최성각은 책을 읽으며, 국가권력, 자본권력, 사회권력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국민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대강을 개발하겠다는 대통령에게 “이 나라 산천은 당신 것이 아니다”라고 웅변하며,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권력에게도 “범죄 집단”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한다. 


그 화살은 우리에게도 향한다. 늘 부자가 되려고 하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황량한 사람의 마음’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행복은 경제성장과 결코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책에는 특히 ‘환경’과 ‘생태’에 관한 책들이 눈길을 끈다. 알려진 바대로 최성각은 지난 15년여 동안 환경운동, 생명운동을 해왔다. 그러면서 형성된 생각들이 여러 책을 통해 반영돼 있다. 


또 그가 기획한 여러 책(<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울지 않는 늑대>, <라다크 소녀 뉴욕에 가다> 등)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스콧 니어링, 웬델 베리,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다카기 진자부로 등 세계적인 생태사상가들에 관한 글이 소개된다. 기후변화, 먹을거리, 빈부격차 등 지금 이 시대가 긴급히 해결해야 할 주제들이 최성각의 시각으로 명쾌하게 제시돼 있다.


20대 중반, 나는 광산촌의 교사였다. 학살을 알게 된 이후, 무슨 일을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쪽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 학살극에서 내 역할은 다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 슬픔은 나를 자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비참한 슬픔’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나는 골목에 똥이 그득한 광산촌 사택촌 끝자락의 한 자취방에 엎드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흐느껴 울었다. 그래서 세로조판의 '청년사'판 내 첫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에는 지금도 내 눈물자국이 배어 있다. 그것은 디 브라운도 말하듯, 그 책이 '기분 좋은 책'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백인의 야비한 잔혹성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우리 현실 때문이었다.


20대 중후반, 그는 광산촌의 교사였다. ‘80년 사북사태’가 그의 옆 동네에서 벌어졌고, 멀리 남녘에서 학살극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슬픔’을 마음에 간직하고 책을 읽을 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책을 읽으며 세월을 버텨나갔다. 책은 암울한 시절을 버티게 해준 ‘담요’이자 더 나은 미래를 보게 해주는 ‘몽둥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묻는다. “대통령은 왜 이리 힘이 셀까?” 그렇게 비판하고, 또 비판해도 대통령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분통을 터뜨린다. “지금 이 국가시스템, 즉 한 사람에게 너무나 막강한 힘을 부여한 작금의 대통령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30%대 지지율로 대권만 움켜잡으면 뭣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작금의 대통령제는 정녕 합당하고, 바람직하고, 흠결 없는, 최선의 제도일까? 


숱한 피를 흘리고 맞이한 잘난 ‘근대 이후의 권력구조’가 이 지경으로 작동되는 것은 과연 개선의 여지가 없을까,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묻게 되는 것이다.” 결국, 4대강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막고자 했던 새만금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듯이.


최성각은 만날 대통령을 비난하는 자신도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그는 오늘도 화를 내고 있다. 대통령만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생명 파괴에 사용하는 전문가들도 비판 대상이다. 


“허튼소리를 밥 먹듯이 일삼고 임기웅변의 대가들인 정치가들보다 나는 위스콘신 대학의 박재광 교수 같은 이에게 더 경악했다. 아아,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무대 뒤의 전문가들 얼굴이 바로 저렇게 생겼구나. 저렇게 온순하고 우아하게 생긴 얼굴에서 저토록 비정하고 오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토해내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4대강 공사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 박재광 교수에 대한 코멘트다.


최성각은 또 성장 일변도의 경제 정책이 결국 토건 국가를 부르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 것이 결국 ‘괴물 삼성’을 만들고,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최성각은 소리친다. 풍요가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고. 


우리는 일찍이 보기로 한 것, 보기로 되어 있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면서 살고 있다. 세상은 열려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보고 싶은 것,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감옥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닫혀 있는가? 인간의 야만에 침묵으로 대응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동물들이 닫혀 있는 존재일까? 기계처럼 자폐적인 사고방식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갑갑한 우리 인간들이 닫혀 있을까?  “전 지구적 환경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다. 이보다 무섭고 끔찍한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국경도, 이데올로기도, 부자나라나 가난한 나라도 차별하지 않고 불가항력적으로 인류에게 닥칠 재앙이기 때문이다. 어디 인류뿐일까? 이 행성에 살고 있는 1000~3000만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차별 없이 닥칠 재앙이기 때문이다.


최성각은 지난 1999년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을 만든 뒤부터는 환경운동과 더불어 ‘환경책’을 널리 알리는 일도 겸했다. 부록으로 수록돼 있는 ‘우리 시대 환경책 목록’에도 잘 나와 있지만, 최성각은 ‘환경책’에 아주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환경책에는 지금 우리네 살림살이가 최소한이나마 사람답게 지속되기 위한 고민과 우려, 깊은 탄식이 배어 있고,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과 뜨거운 감성이 있고, 메아리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우리 문명에 대한 진단이 있고, 좀 드물긴 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의 힘도 보여주고 있고, 자궁의 마음, 땅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 희망의 근거인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해법을 상상력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담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최성각은 환경책을 널리 알려왔고, 이 책에 그 마음이 아주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


이 책은 우리 시대가 꼭 해결해야 할 긴급한 문제, 우리 시대가 꼭 알아야 할 환경사상가, 꼭 읽어야 할 환경책 등을 통해 이 세상의 변화를 위해 조그마한 실천을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