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유전자를 부모가 선택하는 것은 정당할까? 타고난 재능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운동선수와 근육강화제의 도움을 받는 선수 사이에는 어떤 윤리적인 문제가 있을까?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아이의 지능을 높이는 것과 교육을 통해 아이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진_생명의 윤리를 말하다ㅣ마이클 샌델 지음ㅣ강명신 옮김ㅣ동녘 펴냄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도한 불안을 만들어낸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지은이인 마이클 샌델은 부유층 부모들이 아이를 비싼 학교에 보내고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피아노와 발레, 수영을 가르치는 비용을 대서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하게 이끌던 일이 유전공학 시대에는 부모가 유전자를 아예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경고한다. 부가 세습되면서 벌어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 현상와 같이 다가올 미래에는 유전학적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성취를 운동에서 살펴보자. 자연적인 재능의 축복을 남다르게 받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노력과 분투와 투지와 기개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피트 로즈 같은 야구 선수를 찬양한다. 한편 우리가 찬양하는 조 디마지오는 애쓰지 않고도 우아하리만치 주어진 재능을 잘 보여주는 데서 실력을 발휘한다. 알고 보니 두 선수 모두 실력을 좋게 하는 강화제를 먹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선수에게 더 환멸을 느끼는가? 스포츠의 이상 중에서 어느 측면이 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노력인가, 재능인가?:::


책은 단순히 윤리를 말하는 것을 넘어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반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 참여한 대통령생명윤리위원회 시절, 지은이는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 의사 등이 포함된 17명의 위원들과 함께 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연구를 허용할지 여부를 놓고 6개월 동안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투표를 했는데, 이 가운데 10명이 연구를 금지하는 쪽에 표를 던졌다. 이 연구가 필연적으로 인간 복제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은 인간 복제를 제한하면서 연구를 허용하자는 쪽이었는데, 지은이는 여기에 속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이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연구를 금지하는 입장을 취했는데, 줄기세포 연구가 오용 또는 남용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지은이는 책을 통해 생명윤리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배아 복제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그는 “배아 복제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인간 복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배아가 세포 덩어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동일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은 사물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생각에 잘못이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는 미국의 요세미티 공원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체인 세쿼이아를 예로 든다. 오래된 세쿼이아 숲을 존중한다고 해서 인간이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가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면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누구나 일상에서 느끼는 윤리·도덕적 딜레마를 논증과 설득으로 풀어나간다. 우리가 아주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청각장애를 가진 레즈비언 커플이 청각장애자의 정자를 구해 똑같이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한 일을 예로 들며, 누구나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이 일이 왜 도덕적으로 잘못됐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또 근육 강화제, 인지력 강화제, 키를 크게 하는 호르몬 처방, 부모가 아기의 성별을 선택해서 낳게 하는 기술 등 현대 유전공학적 기술이 인간의 자유를 어떤 점에서 침해하는지를 따져보고 있다.


:::유전공학으로 유전적 제비뽑기의 결과를 뛰어넘을 수 있고, 운이 정해주던 것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우연히 주어지는’ 인간의 능력과 성취의 성격이 무색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같은 운명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도 줄어들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 성공은 자기 능력이고, 혼자만의 것이라는 생각을 지금보다 더 할 것이다.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도, 혜택을 덜 받았으니 보상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은 성공에 부적격한 사람이니 유전적으로 부족한 면을 강화할 만하다고 여길 것이다. 보험 시장의 연대성은 완벽한 유전학적 지식으로 사라질 것이다. 또 유전학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하는 날이 오면 그동안 자신의 재능과 행운의 우연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연대 의식도 소실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선물로 보는 윤리(the ethics of giftedness)’다.” 이처럼 생명을 경쟁이 아닌 선물로 바라보는 지은이는 ‘유전학적 완벽함’이 아닌 ‘인간에게 주어진 부족함’도 귀중하게 여기는 대안적 생명윤리의 커다란 틀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