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데일리 한주연기자> 현대의 소비자들은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몰고 그늘에서 키운 공정무역 커피를 사러 동네 생협 매장으로 간다. 사람들은 물질 자체를 소유하려는 의도보다는 결혼 상대자나 친구들에게 자기를 과시하려고 이유로 신호를 보낸다.


제프리 밀러는 인간의 이러한 과시 행동 안에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을 뽐내고 짝을 찾는 인간 본성을 바탕으로 소비주의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문화를 아우르는 역사적인 관점뿐 아니라 모든 종을 아우르는 진화적 관점에서 소비주의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우리가 가진 인간 본성을 이해하면 마케터들은 소비자 선호를 이용해 돈을 더 많이 버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되는 동시에 소비자들은 마케터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돈을 아끼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펜트>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 동녘 펴냄.


<스펜트>는 지위, 존경, 명성, 성적 매력, 사회적 인기 등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욕구를 소비하지 않고 채우는 경제적인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형질을 과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로마시대에 토가로 지위를 과시하던 우리가 어떻게 현대 맨해튼에서는 프랭크 뮬러 시계로 지위를 과시하게 됐을까? 프랭크 뮬러 시계와 프라다 가방은 우리에게 어떤 지위를 가져다줄까?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상품의 1파운드당 가격표를 살펴보면,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상품은 값이 싸고 자기 자극과 사회적 과시로 나르시시즘을 채우기 위한 상품들은 값이 매우 비싸다.


공작의 꼬리는 적응도 지표의 고전적 사례다. 공작의 꼬리는 생존 기능이 전혀 없고, 번식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단지 수컷 공작의 건강과 적응도, 유전자의 질, 씨앗과 곤충을 찾는 능력, 호랑이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암컷 공작을 매혹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사자의 갈기, 사슴의 뿔, 혹등고래의 노래도 명백한 적응도 지표들이다. 인간의 몸도 적응도 지표들로 가득하다.이 지표들은 건강과 번식력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전달하고, 어느 정도는 짝짓기 상대를 매혹하기 위해 성선택된 형질들이다. 자질을 알리는 몸의 신호로는 얼굴, 목소리, 머리카락, 피부, 걸음걸이, 키가 있다. 여성의 가슴, 엉덩이, 허리, 남성의 수염, 페니스, 상체 근육량도 포함된다. 인간의 수많은 마음의 형질들도 적응도 지표로 진화했을 것이다. 언어 능력, 유머, 미술과 음악 능력, 창의성, 지능, 고운 마음씨가 여기에 포함된다.


살아가는 데는 별로 돈이 들지 않지만, 과시하는 데는 돈이 아주 많이 든다. 마케팅은 이상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기꺼이 구매할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함으로써 인간의 욕구를 채우려는 체계적인 시도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본성의 야생적인 미개척지가 기술의 야생적인 힘과 만나는 지점이다. 


가장 뛰어난 마케팅 지향적인 기업들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욕구를 찾아주고,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 욕구를 채우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이미 오래전에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반영된 것들이다. 마케팅 지향적인 나라는 납세자들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국가가 유권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정부는 이제 국민들이 어떤 국가 서비스를 원하는가 하는 ‘시장조사’를 해야만 한다. 마르틴 루터나 장 칼뱅이 성직자들의 재정적 이해가 아니라 신자들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교회를 조직했던 종교 개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마케팅 혁명은 심리학이 갖고 있는 인간 본성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수사관으로서의 자리를 시장조사에 내줬다. 진화가 인간 본성의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마케팅은 현대 인간 문화의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게 됐다.


우리가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여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는 선사시대의 생활 방식과 현대의 생활 방식의 가장 좋은 점들을 결합할 좋은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 생태·공동·체·원시주의 원리만으로는 지저분하고 무지하고 지루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만으로는 나르시시즘, 소모, 소외밖에는 얻을 게 없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형질을 과시하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을 찾을 자유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고삐 풀린 소비를 조장하는 소득세에서, 윤리적 투자, 자선, 사회자본, 이웃 간의 정 같은 장기적인 가치를 촉진하는 소비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우리보다 더 행복했던 조상들의 삶과 지금 우리의 삶을 비교해보는 ‘소비주의 탈출 훈련’ 가이드를 소개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당신은 아이에게 이야기를 지어 들려준 적이 있는가? 얼굴에 닿는 햇살의 따사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부모, 형제자매와 함께 식사를 했는가? 오래된 친구와 수다를 떨었는가? 새 친구를 사귀었는가? 망가진 물건을 수리했는가? 사랑을 표현하고자 누군가와 조용히 눈을 맞추어봤는가? 지은이 제프리 밀러는 이러한 일을 했다면 몇 번이나 했는지 더해 점수를 내보라고 한다.

 

지은이는 또 카드를 집에 두고 쇼핑몰에 가보기, 가장 비싸게 구입한 물건들의 리스트와 행복을 가져다준 것들의 리스트를 짜 보고 그것들이 몇 가지나 겹치는지 세어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명절에 가족들에게 손수 만든 선물을 주고 지난해에 돈으로 산 물건을 줬을 때와 상대방의 반응을 비교해 보기, 자신이 가진 것 중 미래의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될 만큼 오래갈 물건을 꼽아보기 등을 제안한다.

 

지은이는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한다. 우리가 어떻게 소비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에서 생겨났는지, 어떻게 소비자본주의를 개선할 수 있는지 꼭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훈련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인 자본주의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자유 시장 사회가 맞닥뜨리는 가장 중요한 ‘경제가 우리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해답을 알려줄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