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지도자들은 경제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가끔은 서구의 정책 결정자와 평론가들이 그것을 혼돈하거나 잘못 이해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 모델이 더욱 널리 이해되었다면 오래전에 서구에서 포괄적인 반발에 부딪쳤을 것이다. 요점은 이전의 소련 체제처럼 동아시아 모델은 서구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동아시아 모델은 소련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서구에 정치경제적 양립 불가라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

 

사진_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전쟁ㅣ에이먼 핑클턴 지음ㅣ이양호 옮김ㅣ에코리브르 펴냄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싸움에 대한 이야기다.

 

지은이 에이먼 핑글턴은 중국이 수십 년 안에 세계 문제에서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할 것이며, 미국 외교에 던지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미국인은 이제 글로벌리즘이냐 민주주의냐 하는 시대적 선택을 해야 하며 두 가지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중국과 미국 이 두 나라가 조용히 치르는 싸움을 이야기하면서 우선 세계가 서구의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의 정책 결정과 관련한 지식 풍토가 오도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서구식 자유시장 이론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분은 중국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억압과 권위주의는 부를 쌓고 자본을 낳았다.

 

책에 따르면, 두 나라의 경쟁은 일정 정도 ‘체제 충돌’의 문제인데, 사실상 이들 두 체제는 양립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서구와 유교 지역 사이에 세계화가 급진적으로 진행되면서 구조적인 갈등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또 미국 정부는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 입장에서 중국이 부유해지면 자유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는 길이란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중국이 부유해지는 과정이 베이징 정부의 권위주의를 잠식시키는 데 한몫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는 서양 철학이 보편적 진실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생활수준 향상이 필연적으로 정치 자유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신화라고 일축한다. 아울러 세계 무역 면에서 중국의 방식이 미국의 방식보다 결과적으로 우세했으며 유교 사회가 서구 사회보다 더 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런 태도의 기저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유교 국가와 권위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 경제가 단순히 한국 수준의 1인당 소득으로도 군사 기술 면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면서 “군사력에서 세계 제일인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밝힌다. 또 “서구는 그런 가능성이 초래할 지정학적 조정 규모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이 없다”고 덧붙힌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현재 서구의 중국 전문가들이 현상 분석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영국의 경제평론가 윌 허튼은 중국이 1980년 도입한 1자녀 정책이 높은 저축률을 달성한(한 자녀만으로는 불안한 노후를 대비할 수 없으므로)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국가 저축률 부양에 필요한 요소라면 제3세계는 이미 오래전에 선진국으로 진입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중국의 광범위한 소비 억제 정책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중국의 소비 억제 정책의 주요 측면은 무역 장벽, 신용 통제, 반소비적 토지 정책, 가격 담합, 여행 제한 등이다.

 

지은이는 서구의 관찰자들이 현지에 가보지도 않고 연구하면서 동아시아의 저축 현상을 수수께끼처럼 생각한다고 추측한다. 이는 서구가 동아시아를 보는 방식이고, 소비 억제는 동아시아의 굳건한 비밀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기관은 유교 지역의 도전 규모를 이해하기보다는 인정하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중국과 미국의 상호 역학관계를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국제 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힘의 경쟁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