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론 비슷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다른 나라, 경제적·정치적 위치에서 영원한 동반자이자 라이벌인 나라…, 우리가 일본을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그런데 이 나라의 역사를 일본인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어떻게 해석될까?


사진_쇼와사 1ㅣ한도 가즈토시 지음ㅣ박현미 옮김 ㅣ루비박스 펴냄.jpg ≪쇼와사 12≫는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은 물론, 이데올로기보다 실용주의에 무게를 둔 국가 정책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알 수 있다.


‘쇼와(昭和)’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다. 이 책은 이 시기인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미군)의 점령 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소련을 진공하며 태평양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린다. 1941년 8월1일 일본에게 독이일 삼국동맹에서 빠질 것을 강하게 요구하던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 이에 맞춰 일본 지도층 일각에선 “2년도 버티지 못한다. 시간을 끌수록 일본의 물자과 병력은 떨어지고 적은 강력해진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전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본 내 전쟁 강경파와 반대파들이 대격론을 벌이는 동안, 신문은 날마다 ‘대동아공영권의 최단거리’, 즉 전쟁을 선동한다. 결국 주전론자인 도조 히데키 내각이 발동하고 미국이 교섭에서 강경하게 나오면서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 열린다.

 

남경에서 일본군에 의해 대량학살과 각종의 비행사건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라 저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국민에게 마음속 깊이 사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도쿄재판에서 말했던 것처럼 30만 명을 죽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경 시민을 소개疏開한 상태라 시민이 30만 명이나 남아 있지 않았고, 군대도 그렇게 많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략) 일본군은 칭찬을 받을 만한 군대가 아닙니다. 쇼와 14년 2월에 일본 육군성이 몰래 만든 <비밀문서 제404호>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

“어느 중대장은 (중략) 강간을 한 뒤의 처리방식까지 가르쳐주었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하나하나 조사했더니 모두 강도 살인, 강도 강간의 범죄자들뿐이다.”



책은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속사정, 최악의 선택으로 일본을 몰고 간 장본인들의 대책 없는 모습과 그 속에 숨겨진 비화를 만날 수 있다.


‘몰래 공격했다’는 오명 속에 진주만 공격은 대승을 거두고, 그 후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일본은 대동아신진서 건설, 제국 영토 확장을 꿈꾼다. 그러나 하와이 공격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려 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일본군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암호가 해독돼 적에게 작전을 읽힌 일본군은 과달카날과 인도의 임팔가도, 사이판에서 연이어 완패하고,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돌진하는 특별공격까지 실행하고 만다. 당시 해군은 “가미카제특공대는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라고 선전하기에 이른다.


1945년 극도로 염세적이고 불안한 분위기의 일본에 도쿄대공습이 가해지고 오키나와에서 전함 야마토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마침내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되는 최악의 궁지에 몰린다. 그해 8월15일, 일본은 소위 천황의 ‘성단’에 의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을 하게 된다. 이후 패전국 일본의 운명은 맥아더를 대원수로 하는 연합국(GHQ)의 점령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놓이게 된다.


사진_쇼와사 2ㅣ한도 가즈토시 지음ㅣ박현미 옮김 ㅣ루비박스 펴냄.JPG  이 책의 지은이 한도 가즈토시는 전후 일본이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연합군 앞에서 순종적인 아이처럼 ‘변신’했던 역사에 대해 자성적인 비판을 던진다. 지은이에 따르면, 종전 3일 후 일본 지도층은 연합군을 맞이할 준비의 일환으로 ‘특수위안시설협회’를 설치하고 1억 엔의 예산을 마련해 위안부 1300여명을 모집한다. 지은이는 ‘평범한 일본 여성의 순결의 값으로 1억의 비용이면 싸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통해, 강자 앞에서 한순간에 비굴해지는 일본인에 대해 지적한다.


이렇게 시작된 전후 일본은 연합군이 지시하는 대로 토지개혁과 산업기술, 경제정책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천황제라는 국체를 지키는 데 성공하나, 연합국의 뜻에 따라 ‘천황은 상징이다’라는 방향을 공표하고 미국이 쥐어준 초안대로 신헌법(현재의 평화헌법 제9조를 포함)이 세워져 현재까지도 논란의 문제를 남기게 된다. 이후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일본은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경제발전을 최우선하는 국가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지금의 일본의 형태로 향해 간다.


한국전쟁 특수는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신풍’


그리고 미국의 1진이 상류한 날인 28일, 히가시쿠니노미야 수상이 기자회견을 열어 그 유명한 일억 총참회라는 말을 합니다. (중략) 일억 총참회론이 신문에 등장하자 어제까지 국민들을 격려했던 선생들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우리도 잘못했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국민을 패망으로 이끈 책임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민족의 정신이나 투쟁심이 나쁘다면 나쁠 수도 있지만 전쟁으로 치달을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결단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이 순간에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일본인들은 여기서 제대로 역사를 인식하고 역사를 통해 배우고 일본의 주장, 일본인이 저질렀던 일들과 마주하고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과거의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정말 죄송하다’라며 자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전부 부정하고 맙니다. 일본도 심각한 패전 콤플렉스에 빠졌습니다.



책은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별수요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후 일본은 극도의 가난을 겪으며 ‘1천만 아사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연합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대기업이 해체되고 산업의 제재를 받으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당시 일본의 상황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완전히 달라진다. 유엔군의 전진보급기지가 돼 단번에 모든 물자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당시 일본인은 미국의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동시에 대량생산방식과 품질관리를 습득했다. 그 결과 3년의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고 규모도 크게 확대돼 그 흐름을 타고 발전을 거듭해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도요타, 혼다, 소니 등 일본 대표기업의 토대도 이때 이뤄졌다. 일례로, 연간 300대의 트럭을 생산하던 도요타가 월 1500대까지 늘려도 수요를 쫒아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워 과거를 딛고 일어난 일본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일본을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고민을 잊은 채 물질주의에만 빠져들었던 역사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책은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전쟁이 전개되는 양상, 패전 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변화, 나아가 일상생활의 변화까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폭넓은 일본근현대사를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