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단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만을 하는 것일까?


사진_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혁명ㅣ데이비드 B. 버먼 지음ㅣ이민아 옮김ㅣ시그마북스 펴냄.jpg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은 우리가 사는 세계,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 우리가 실현되기를 갈망하는 기대감의 매우 많은 부분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쓰는 것, 우리가 버리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디자이너들이다. 디자이너들은 우리가 이 세계를 사는 방식,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내심 자기네가 일을 중단하면 세계가 존재를 멈출 것이라고 믿는 건축가들과는 반대로 우리 그래픽디자이너들은 우리의 작업 없이도 세상은 별일 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좀 칙칙해 보일 수도 있고 우리가 서비스나 상품을 홍보하는 일을 도와주지 않아서 매상이 좀 떨어지는 기업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래픽디자인으로 인해서, 아니 그보다는 그래픽디자인이 없어서, 생명을 희생해야 했던 상황은 있었다.



“디자인이 대통령을 선택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집을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현재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 위기가 정말로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좋은 일, 즉 세상을 바꾸기 위해 창조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창조적 디자인을 위해 전 세계 모든 디자이너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1997년에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에 불꽃이 솟았다. 짙은 연기 때문에 비상구 신호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신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데다 크기도 작고 조명마저 가물가물했다.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열여섯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결과, 눈에 잘 띄고 보기에도 산뜻한 새 신호판 디자인을 위해 우리가 고용되었고, 신호판을 적당한 위치에 제대로 설치하기 위해 건축 설계자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혁명≫은 전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제조된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설득하는 역할을 해온 디자이너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다. 지은이 데이비드 B. 버먼은 이 책을 통해 디자인 현장과 디자인 소비, 양쪽 부문에 지속가능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직업윤리를 지키는 것이 스스로의 직업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주는지를 전하면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도 그 가치를 연장한다.


책에 따르면, 이제는 ‘누구나’ 디자이너인 시대다.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연결 창을 만들고 꾸밀 것을 장려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웹 브라우저 창의 크기를 손질하고 TV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MP3의 재생 목록을 만들고 휴대전화 벨소리를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로 바꿀 때마다 우리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웹2.0의 오픈소스 운동에 동참한다면 그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미래가 오늘날 우리가 공동으로 참여해야 할 집단 디자인의 프로젝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