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많은 영화들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즐겨 찾는 것일까? 과거 명작 영화인 <밀회>나 <랩소디> 등을 비롯해 최근 <샤인>과 한국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세월을 뛰어넘어 꾸준히 사랑받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힘과 매력은 무엇일까?


사진_클래식을 좋아하세요ㅣ김순배 지음ㅣ갤리온 펴냄.jpg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20세기 현대음악들을 초연하며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순배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비장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빛깔은 깊고 진하다. 고전적 낭만 어법에 충실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러시아적인 서정에 깊은 맥을 대고 있지만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감싸 안아주기에 충분한 깊이와 폭을 지니고 있다. 두터운 텍스처가 주는 착잡한 느낌과 그 틈새로 홀연 솟아오르는 맑은 멜로디 라인은 극과 극을 넘나드는 인간 정서를 표현하는 데 아주 적합한 장치가 돼준다.”


≪클레식을 좋아하세요?≫는 피아니스트 김순배의 클래식 사랑의 지난한 여정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의 내용은 ‘회심(悔心)한 내부인(內部人)’이 내어놓은 일종의 낙서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의 어느 구석엔가는 음악에 전 영혼을 연소시키지 못한 자의 회한이 불온하게 스며들어 있을 것만 같다”고 말한다.


책은 음악의 역사를 종횡하며, 우리 인간의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 인생사의 희노애락(喜怒哀樂), 더 깊게는 존재의 모순 자체와 연관해 클래식 음악을 깊이 있게 설명한다. 지은이가 “성찰과 자책과 회한의 와중에 위로와 초월의 순간을 궁극적으로 선사하는 음악의 신묘함에 대한 재확인이 결국 이 책의 주제일 것”이라고 밝혔듯, 음악과 함께 우리 삶의 고뇌와 행복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지은이는 “예술가들은 항상 ‘이곳’에 살면서 ‘그곳’을 꿈꾸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쩌면 음악이란 “지금 ‘이곳’에는 없는 그 무엇들로 가득할 ‘그곳’을 향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나그네 됨을 직감하는 예술”이라고 암시한다. 이 때문일까. 책의 곳곳에는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가 진하게 배어 있다. 책은 이렇듯 개인적이고 내밀하다.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음악의 깊이를 더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음악사조 등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아닌, 음악을 사랑하게 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책의 내용 가운데 지은이의 베토벤에 관한 해석이 주목된다. “베토벤으로부터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보편화된 음악사적 시각은 아주 정확한 것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낭만주의란 고전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이 아닌 하나의 정신적 태도라는 인식이 보다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또 “베토벤이 보여준 강인한 형식 속 낭만적 감정의 고양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면, 모든 이원적인 것들이란 언제나 대립의 상태에 있을 필요는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에게 있어서 형식과 내용, 육체와 정신 그리고 낙관과 비관 등등의 모든 대칭적 관념들은 서로 부딪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보완하며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성공적 결합을 이루었기 때문이다”고 이야기한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이에 대해 말로 할 수 없는 슬픔과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표현하는, 음악의 본질에서 답을 찾는다. 이러한 성찰의 과정에서 음악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한다.


책은 단순한 클래식 해설과 음악가의 인생, 작품 설명을 넘어선다.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음악적 편견이 어떻게 우리를 음악적 우중(愚衆)으로 만드는지,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과 음악을 접하는 습관적 태도가 음악을 즐기는 것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따뜻하게 충고한다.


스스로를 ‘회심(悔心)한 내부인(內部人)’이라 말하는 한 피아니스트의 불온한 음악적 여정과 각별한 클래식 사랑을 소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음악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 조용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권유한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위로하고, 보이지 않는 행복을 축하하는 클래식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