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정상인가? 아니면 비정상인가? 정상이고 싶은가, 비정상이고 싶은가?”


사진_위험한 정신의 지도ㅣ만프레드 뤼츠 지음ㅣ배명자 옮김ㅣ21세기북스 펴냄.jpg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겐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존재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혹은 소속된 집단과 사회의 전통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상 주변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기는 힘들다. 때문에 우리는 늘 '평범한' 내면을 끄집어내고, '정상'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정상 여부를 가리는 ‘표준안’이 존재하는 것일까? 다수라고 소수에 대해  '정상이다, 비정상이다'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길까?


정신과의사나 심리치료사는 뉴스를 볼 때면 가끔씩 답답해한다. 뉴스 속에는 전쟁도발자, 테러리스트, 살인자, 경제사범, 냉혈인, 그리고 뻔뻔한 이기주의자들이 가득한데 아무도 그들을 치료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정상이란다. 나는 매일 병원에서 치매 환자, 의지가 약한 중독자, 신경이 예민한 정신분열증 환자, 심각한 우울증 및 조울증 환자들을 만난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의심이 저 밑바닥에서 서서히 올라온다. "나는 엉뚱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상인이 더 문제다."



아무리 뛰어난 담론을 소유한 전문가라 할지라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설명하기 어려우며, 설령 그러한 경계를 만들더라도 그것은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독일의 정신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만프레츠 뤼츠는 ≪위험한 정신의 지도≫에서 ‘비정상’은 평범하지 않은 모두를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고 싶어 안달이 난 미치도록 정상인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반응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사회를 위협하는 쪽은 정신병자들이 아니라 히틀러와 스탈린, 김정일과 마오쩌둥, 디터볼렌과 패리스 힐튼 등처럼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는 다소 위험한 발상을 아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히틀러는 정신병자였을까? 누가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은 바로 대답할 것이다. "그러한 대량 학살자는 정신병자임이 틀림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학살을 자행하는 일은 정상인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정신병자였을까? 그렇지 않다! 만약 히틀러가 정신병자였다면 무죄를 선고받아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당시 히틀러를 제일 가까이에서 본 정신과의사는 나중에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신경정신과 학장을 지낸 카를 빌만스뿐이었다. 히틀러를 멀리서 본 다른 정신과의사 중에 히틀러가 정신병자이므로 무죄를 선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히틀러는 확실히 기괴한 사람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증오와 공격성, 그리고 파괴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만약 히틀러를 정신병자로 인정했다면 그와 관련된 모든 역사적 재앙의 충격은 완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히틀러를 정신병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했을 테고 모든 재앙은 자연스럽게 이해되면서 잊혔을 것이다. 정신병에 시달리는 뮌헨 출신의 화가에게 약간의 의약품과 그를 보살펴줄 사람 몇 명,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 심리치료사가 있었다면 수백만 명의 죽음을 막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히틀러는 정상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만큼 정상인이었다. 그는 정상을 넘어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자신을 극히 정상으로 보이게 하는 능력,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고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자신의 30년 경력을 대변하듯 수많은 환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지은이는 자신이 만난 유쾌한 환자들에 대한 얘기들을 끊임없이 풀어놓으면서 환자의 섣부른 진단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환자가 중심이 되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책에는 뇌졸중, 중독, 정신분열증, 조울증과 우울증 등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사례들이 나온다. 


교황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정신분열증 환자, 자신이 ‘예언자 엘리아’라고 주장하는 과대망상 환자, 머리가 유리로 돼 있고 그 안에 작은 톱니들이 가득한 난쟁이를 보는 괴짜 환자, 의사를 제빵사라고 착각하는 귀여운 환자, 거실 빈 벽에서 노란색 그림을 보는 노인 환자, 전기경련요법으로만 치료받기 원하는 환자 등의 사례를 통해 다소 머리 아프고 무거울 수 있는 정신의학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쉽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인지를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동네 정육점 주인에게 내용의 난이도를 감수 받았다.

 

우리 사회에는 극히 정상적인 광기만 있는 게 아니다.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도 있다. 단둘이 기차 안에 마주앉아 여러 시간을 함께 했는데도 전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쓸쓸하고 창백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정상적인 우리 사회의 회색 쥐다. 이들의 모토는? “튀지 말자!” 이들은 학교에서도 약간 노력하는 인상을 주면서 늘 중간을 유지했고 그래서 반 친구들도 이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춘기 때는 선생님 의자에 몰래 껌을 붙이는 행위로 반항했다.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들키지도 않았다. 이들은 청결을 최우선으로 삼고 뼛속까지 청결한 여자를 동네 빨래터에서 만나 평생의 배우자로 삼았다. 돈을 준다기에 점원이 되었고 이상해 보이지 않으려고, 튀지 않으려고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이들은 언제나 잘 차려입은 신사처럼 옷을 입었다. 그가 뭘 입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면 잘 차려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늘 전체의 의견을 따랐는데, 약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을 경우에도 과격하지 않게 표현했다. 이들은 평이하게 죽었고 대부분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묘비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조용히 잠들다.” 이들은 죽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죽으니까.



무엇보다 지은이가 책을 통해 주장하는 것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절대적인 사고를 가지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는 비정상이기 때문이라는 것.


정신과 병동의 환자와 특이한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환자였던 시기는 아주 짧다. 아니 여기서 ‘그들’은 바로 ‘우리 모두’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인생의 맨 처음과 전성기, 그리고 말년에 한 번쯤은 정신병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척 중에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이러한 이유에서 평생 혹은 아주 짧게 인간의 한계를 경험했던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숙고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