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데일리 한주연기자>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고 자라는 불필요한 식물.’ 잡초의 사전적 정의다.


잡초라는 단어는 인간이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쓰였다. 수렵과 채취를 하던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식물을 선택하여 재배하면서 자연은 자율권을 상실한 채 수탈의 대상이 됐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변현단 지음, 들녘 펴냄.



인간이 임의대로,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식물을 취사선택하고 경작지를 정하고 목적에 맞게 식물을 재배하고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작물이라는 단어도 그때 생겼다. 반면 인간이 경작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 인간에게 불필요한 식물이 된 것을 잡초(雜草)라고 부르게 됐다.


그런데 인디언 사회에는 잡초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지 않았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는 생명이며 자신들의 친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잡초는 식용이자 약용이 돼주는 고마운 식물이일 따름이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잡초를 ‘쓸데없는 풀’로 간주한다. 인간의 필요나 의지와 상관없이 제 멋대로 나고 자라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말부터 불기 시작한 문명 비판적인 웰빙(Well-being) 붐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스스로 식재료를 가꾸어 먹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인간의 식탁을 점령한 석유제품들이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이에 따라 언제나 먹는 야채나마 건강하고 싱싱한 것을 섭취하기 위해 인간에게 유기농·축산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형편이 닿는 이들은 서둘러 텃밭을 구입하거나 실내에 정원을 마련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잡초가 세간의 주목받고 있다. 공해와 무관한 자연산이라는 것, 질긴 생명력으로 가늠하건대 인간에게도 좋을 거라는 예단, 그리고 방송이나 서적을 통해 보고된 솔깃한 장점들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잡초를 상용한 덕에 특정 질병에서 벗어났다는 경험담이 한몫을 했다. 특히 농부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잡초가 이제 비로소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잡초는 전부 모두 식용 가능한 것일까? 과연 어떤 잡초에 약성이 있는 것일까? 혹시 잘못 먹었다가 오히려 몸을 다치게 되지는 않을까? 해마다 사방 천지에 돋아나는 들풀을 보면서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잡초음식으로 건강 누리기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는 우리 주변에서 자라는 잡초들에게 독이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독은 과하게 먹을 때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책은 모르는 풀이라면 일단 혀끝으로 맛을 보라고 권한다. 독하다 싶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 이 외 봄에 나오는 잡초의 새순은 모두 생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지은이 변현단은 “여름이나 가을 잡초들은 데치거나 삶아서 혹은 물에 담가 독을 빼고 먹는다”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동안 독성을 품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상추와 배추 등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텃밭 재배식물에서 눈을 돌려 숲과 들에서 자라는 잡초를 보라고 말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잡초는 종자를 따로 살 필요가 없고, 슈퍼마켓에서 가서 굳이 돈을 내고 사지 않아도 된다. 지천에 널린 것들을 채취해서 철 따라 즐기면 되는 것을 우리가 몰랐을 뿐이라는 것.


“독이 있으면 어떡해요?”라는 물음에 대해 지은이는 “운명이지요. 생이 그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일갈한다. 이어 사람은 누구나 경험한  만큼만 알고, 아는 만큼 행동하는 법이므로, 이제 영양과 약성이 풍부한 잡초로 건강한 제철밥상을 즐기자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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