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때 아닌 밤중에 불청객이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면…. 게다가 그 불청객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흉사에 늘 지목되는 몽타주라면, 괜히 나섰다가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다면.


사진_재스퍼 존스가 문제다ㅣ크레이그 실비 지음ㅣ문세원 옮김ㅣ양철북 펴냄.jpg 베트남전쟁이 한창인 1965년, 코리건이라는 작은 탄광마을. 코리건은 규모가 작아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데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광부여서 힘세고 거칠고 마초적인 기질이 있다. 사교의 매개체로 몸으로 부딪는 스포츠가 유일한 동네다. 집단의 동질감이나 결속력이 강한 만큼 자신들과 다른 사람에 대해 배타적이다.

 

여기 각기 다른 이유로 왕따인 세 소년이 있다. 먼저 주인공 찰스 벅틴. 책 읽기 좋아하고 공부 잘 하는 범생이로 운동에는 젬병이고 싸움은 커녕 벌레만 봐도 벌벌 떠는 겁쟁이다. 힘 꽤나 쓰고 운동 좀 할 줄 알아야 인정받는 아이들 무리에서 찰리는 관심 밖이다. 찰리의 유일한 친구 제프리 루는 더하다. 제프리는 한 학년을 월반할 정도로 똑똑하고 크리켓 실력도 뛰어나지만 부모님이 베트남 사람이라 인종도 다르고 작고 왜소한 체격에 베트콩, 공산당이라고 놀림을 당하고 두들겨 맞기 일쑤다. 게다가 오스트레일리아도 베트남전쟁에 파병했기 때문에 제프리의 부모도 마을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다음은 악명 높은 재스퍼 존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혼혈로 ‘튀기’라는 놀림을 받는다. 코리건에서 재스퍼 존스라는 이름은 문제아, 어울려선 안 될 경계 대상을 뜻하는 보통명사쯤으로 통한다. 무단결석, 거짓말, 도둑질, 방화 등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는 그의 이름이 거론된다. 아이들은 재스퍼의 짓이냐는 어른들의 심문에 타협함으로서 면죄부를 획득한다. 사람들은 재스퍼에 관한 소문을 만들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로 굳어진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정작 그의 실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나치게 똑똑하면 죽는다?


그렇다고 이 왕따들의 인생이 대책 없이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세 소년은 나름대로 삶을 견디는 방식을 터득하고 있다. 찰리는 이따금 무식하고 힘센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절대 맞서거나 이르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똑똑하면 죽는다’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진리를 몸으로 깨우친 까닭이다. 그 대신 더 많은 단어를 공부하고 매일 밤 노트에 이야기와 시를 쓰는 것으로 세상에 저항한다.


찰리는 세상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게 많다. 동네에서 살인자에 은둔자로 알려진 잭 라이어넬과 재스퍼 존스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은 사실일까, 베트남전쟁에 파병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아버지에게 묻고도 싶지만 마음에 담아둔다. 그것이 정의에 무감하고 불의에 눈감으며 사는 이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단짝 제프리 루가 이유 없이 당할 때 나서서 도와주지 못하는 데 대한 죄책감만은 떨치지 못한다.

 

한편 제프리 루는 반 남자아이들이 아무리 놀리고 때려도 놀라울 만큼 잘 견뎌낸다. 제프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평정심을 잃지도 않고 낙천적인 웃음을 잃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힘센 아이들에게 아부를 하거나 앙심을 품지도 않는다. 바로 그 성정이 주먹보다 강인한 것임을 보여준다. 또 천재적인 크리켓 실력이 있음에도 경기에 끼워주지 않는 아이들 틈에서 볼보이와 잔심부름꾼을 도맡아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근성도 제프리에게 있어 강력한 무기가 된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일까. 찰리와 제프리는 늘 붙어 다니며 깊은 우정을 쌓는다. 둘의 대화에는 위트와 유머, 야한 농담 따먹기에 더해 나름 철학적 울림이 있다. 재스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제프리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껏 몰랐던 세상, 자유, 용기에 대해 알아간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는 열세 살 소년의 눈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편견이 만들어 낸 몽타주, 그 허상과 실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위험천만하고 힘든 조건을 내걸수록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법이다. 소설의 화자인 찰스 벅틴(찰리)은 무서운 만큼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재스퍼 존스를 따라나서는 쪽을 택한다.


재스퍼는 마을을 벗어나 숲속에 있는 자신의 아지트로 찰리를 데려간다. 찰리는 그곳에서 나무에 매달린 한 소녀를 보게 되고 재스퍼에게 설득 당해 소녀의 시체를 호수에 수장하는 것을 돕는다. 시간을 돌릴 수도, 발을 뺄 수도 없다. 그렇게 찰리는 재스퍼 존스와 ‘우리’가 되었다. 그날 밤 이후 찰리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세계에서 깨어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실, 편견과 위선으로 얼룩진 세상의 이면을 마주 보게 된다. 아울러 자신을 짓누르는 비밀을 간직한 채 공포와 의심 속에 진실을 밝히기 위한 퍼즐 맞추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