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은 눈뿐 아니라 귀와 입, 머리와 배 등 온몸을 사용하여 행간의 의미까지 알아내는 역동적인 일,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것처럼 수많은 변신을 겪어 보며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능동적인 일로 ‘읽는다’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한다.


사진_읽는다는 것ㅣ권용선 지음ㅣ너머학교 펴냄.jpg

사람은 평생 하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살 수 있다고 했어.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사람을 배워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에너지로 바꾸는 일인 거야. 한 권의 책 속에 하나의 삶이 있다면, 백 권의 책 속엔 각기 다른 백 가지의 삶들이 숨어 있겠지. 인간은 누구나 공평하게 한 번에 하나의 삶을 살 수 있을 뿐이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엄청나게 다양한 삶을 살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이야. 또 대단한 일이기도 하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통해 ‘보는 것’와 ‘읽는 것’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을 시작으로, 보기보다 더 중요한 듣기의 의미를 먼저 살핀다. 글 이외에 우리가 읽고 있는 것들 - 표정, 경기의 흐름, 영화와 그림 등을 떠올리며 ‘읽는다’는 말의 의미를 짚어 보고, 선인들의 공부법이자 중요한 읽기의 방식인 낭독과 묵독을 통한 등장인물과의 대화, 마음의 눈으로 읽는 법 등을 소개하여 그동안 묵독에만 갇혀 있던 읽기의 차원을 넓혀 준다. 궁극적으로는 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이 돼 보는 ‘변신’이 삶을 풍요롭게 가꿔 가는 비밀을 알려 준다.


저자 권용선 선생은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철학과 역사, 문화 등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하며 <근대적 글쓰기의 탄생과 문학의 외부>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등의 저서를 낸 바 있다. 이 책에서는 중국 고대 지리서이자 신화서인 <산해경>에 나오는 제강을 화자로 등장시켜 동시, 동화, 소설, 희곡 등 다양한 텍스트를 넘나들며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들려준다.


<읽는다는 것>은 ‘읽는다’의 의미를 다시 짚어봄으로써 책 읽기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읽다’라는 단어를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혼자서 고요하게 책을 읽을 때조차도 우리는 혼자가 아닌 셈이야.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책을 쓴 사람이 우리에게 말 거는 소리를 듣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건 입으로 서로 말을 주고받는 대화랑은 좀 달라. 보통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는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지만 책을 읽을 대는 계속 글쓴이의 말을 듣기만 하는 셈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듣기만 해도 별로 지루하진 않지. 왜냐하면 책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이 등장하니까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주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되거든.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 혼자 있어도 절대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은 거야.



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우리는 책을 읽는다고 하면 혼자 조용히 앉아 눈으로 읽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모습은 ‘읽는다’는 일의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읽기는 온몸을 사용하는 역동적인 일이라고 지은이 권용선은 말한다.


읽기의 기본은 바로 듣기. 아주 어릴 때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우리의 읽기는 시작됐다. 때문에 듣기와 읽기는 상반된 것이 아니며, 먼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잘 읽을 줄도 안다는 것이다. 책 읽기의 중요성만을 강조한다면 제대로 된 읽기를 할 수 없다.


옛날 우리 선인들은 낭랑한 목소리로 크게 낭독을 하는 것이 ‘책 읽기’이고 공부라고 생각했다.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 글자를 읽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글을 눈으로 보고 성대를 울려서 입으로 소리를 내고, 그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소리를 내기 위해 배에 힘을 주고 손으로는 책을 잡고 등 ‘몸 전체’를 움직이는 운동이다.


이렇게 소리 내어 글을 읽으면 머릿속이 아니라 내 몸에 새겨진다. 몸에 새겨진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홍차와 마들렌 과자를 먹고서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몸에 새겨진 기억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르면서 우리를 흥분시킬 수도 있고,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기도 한다.


글을 읽을 때 또 하나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눈’이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과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통해 행간 읽기를 함께 해 보며, <사기>를 지은 사마천의 마음을 ‘나비를 잡는 아이’라 표현한 박지원의 이야기를 통해 글쓴이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의 중요성을 짚어본다.


“보고 듣는 것에 얽매이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이는 비단 책 읽기만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지혜다. 우선 잘 듣고 온몸과 마음을 사용한 확장된 읽기를 경험한다면 읽기의 즐거움과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책 읽기는 글에 귀 기울이는 수동적인 활동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읽기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들여다보면 매우 능동적인 활동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글을 읽을 때도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상상하면서 그 목소리대로 읽고 있다. 나 혼자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셈이다.


다양한 책들의 내용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책은 읽기의 의미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 ‘어떤 책은 읽지 않는 것’, ‘건너뛰며 읽기’, ‘군데군데 골라 읽기’, ‘반복해서 읽기’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법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