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석유는 나무와 석탄을 대신해 산업문명의 핵심 에너지가 됐다. 값싼 석유는 새로운 산업으로 관광산업을 탄생시켰고, 석유로 만든 비료와 농약은 녹색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석유는 역사상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엄청난 풍요와 번영을 가져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산업문명은 석유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진_상식 대한민국 망한다ㅣ박승옥 지음ㅣ해밀 펴냄.jpg 석유는 19세기 말 16억 정도로 짐작되는 인구를 단 100년 만에 4배가 넘는 68억으로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런 석유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석유가 고갈되면 당연히 석유문명도 붕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제에너지기구 내부고발자 가운데는 석유정점이 이미 지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석유를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사태가 도래한다는 얘기다.


<상식: 대한민국 망한다>는 석유정점론(Peak Oil Theory)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통해 석유생산 정점이 바로 우리 코 앞에 다가와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아울러 거의 모든 천연자원의 정점(Peak Everything)이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석탄은 몇 백년 더 쓰고도 남을 양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 또한 터무니없는 환상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석탄 생산 국가들의 석탄 매장량과 생산량 통계는 그동안 어이없을 정도로 부정확했던 것이다. 전 세계 석탄 매장량은 1980년대의 10조톤에서 2005년에는 4.2조톤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앞으로 200년은 쓸 수 있을 석탄 매장량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미국도 고품질 석탄은 이미 정점에 도달해 있는 상태다.


금 생산의 정점은 이미 2000년에 지났다. 거의 모든 금속과 희토류 금속도, 나우루 섬의 비극으로 널리 알려진 인산광도 조만간 고갈되고 만다. 물(Peak Water), 토양(Peak Soil), 어족 자원, 인광석 등 거의 모든 자원의 생산정점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화석대수층이 다시 채워지지 않고 급격히 고갈돼 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 곡창지대의 관개농업이 심각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전 세계에서 한 해 동안 소비하는 종이는 하루에 100만 톤을 육박한다. 복사용지 100만 톤을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1500번 에워쌀 수 있고, 두루마리 화장지 100만 톤을 한 줄로 이으면 달까지 200번이나 왕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단 하루 동안에 10개의 제주도보다 더 많은 숲이 사라지고 있다. 20세기 100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던 원시림의 3/4정도가 파괴됐다.


1년에 한반도보다 조금 적은 땅이 사막으로 변한다. 태평양과 대서양에는 한반도보다 6배나 큰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대륙이 3개나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며 해양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하루에 8600톤의 독성화학물질이 땅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고, 약 8000만톤 정도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단 하루 동안 100종 이상의 생물이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있다.


석유정점과 함께 끔찍한 식량위기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비료와 농약을 비롯해 파종과 수확, 운반, 보관 등 식량의 90% 가량이 석유이기 때문이다. 쌀이 남아 쌓아둘 창고가 모자라고 쌀값이 계속 폭락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식량위기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쌀 재고량 100만톤이란 만약 흉작이나 국제 곡물 가격 폭등 등 예기치 못한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바닥나버릴 양에 지나지 않는다고 책은 경고한다.


근대화・산업화로부터 벗어나라

 

지은이 박승옥은 “우리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기이한 슬기동물(호모 사피엔스), 석유동물, 자살동물, 기계동물과 다름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서구 근대화, 산업화의 시각을 버려야만 위기 극복의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책에서 석유문제와 식량난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기존의 시각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석유생산 정점, 이른바 피크오일과 함께 끔찍한 식량위기가 곧 대한민국을 덮칠 것이라고 예단하면서, 기후변화와 함께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근대 산업문명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에 대안으로 과감하게 기존의 국가주의 틀을 깨뜨리고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자치와 자립의 정치경제 체제를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