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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에는 화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감사가, 그리움과 자랑이, 연민과 회환이, 고뇌와 공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초상은 화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간 말 없는 대화라 할 수 있다. 그 대화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모 두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어머니를 화폭에 담았다. 어머니는 그림 안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 화가들은 어머니의 늙고 지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이미 영면한 어머니의 모습까지 화폭에 담기도 했다.
:::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그린 「어머니의 초상」은 우연의 소산이었다. 휘슬러는 새 그림을 시작하기 위해 기다리던 모델이 나타나지 않자, 어머니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휘슬러의 어머니는 첼시에 있던 집 뒤편의 어둑한 방에서 아들 그림의 모델이 되었으나, 며칠이 지나자 너무 힘들어져서 (당시 그녀는 예순일곱 살이었다) 의자에 앉은 자세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녀의 반듯한 자세는 네모진 벽이나 캔버스와 평행을 이루며, 그림에 강조된 다른 수평 수직적 요소들과 빈틈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모델을 서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석 달 동안 수십 차례나 그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938년 펜실베이니아 주 애슐랜드에는 이 그림을 바탕으로 한 2미터 높이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그 명판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존재.” :::
<어머니를 그리다>는 왜 화가들이 어머니라는 소재를 선택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그림과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림은 글이 아니기에 더 웅변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어떤 말보다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각각의 사연을 읽어가다 보면 가난과 싸우고, 남편을 내조하며, 자신의 삶보다 자식을 위해 살아왔던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존재이며, 그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헌신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화가의 어머니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이지만, 화가 못지않은 열정과 재능을 가지고 자녀들을 세계적인 회화의 거장으로 키워냈다. 화가들은 그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줄리엣 헤슬우드는 그림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화가와 어머니의 일생까지 담고 있다.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들여다보면 화가들이 왜 자신의 어머니를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등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어머니의 초상뿐만 아니라, 에릭 윌슨이나 톰 필립스와 같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존재, 어머니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의 어머니 모습만 화폭에 담은 것은 아니었다. 사진이나 기존 그림을 보고 그린 것도 있고, 상상에 의지해 그린 어머니의 모습도 있으며, 일부러 젊은 시절의 모습을 강조해 그린 어머니의 초상도 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어머니의 초상을 통해 자신을 방문했을 당시의 기억을 간직하고자 했고, 마르크 샤갈은 화덕 가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어머니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동생이 보내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어머니를 추억하고자 했다.
폴 고갱과 톰 필립스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려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귀도 레니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렘브란트 판 레인은 어머니를 거의 성녀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고자 했고, 심지어는 성서의 한 부분에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넣어 어머니라는 존재의 신성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에두아르 마네나 마크 거틀러는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어머니가 가진 아픔이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그러나 꼭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게만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카미유 피사로는 깊은 어둠 속에서 지쳐 잠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고, 악셀리 갈렌-칼렐라는 고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심지어 제임스 앙소르는 영면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어머니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될 때” 어머니의 초상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한 루시안 프로이트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자기 어머니의 초상을 그린 화가들은 대부분 놀랄 만큼 어머니와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다. 화가가 어머니와 좋은 관계로 지내지 못했을 경우 아예 어머니의 얼굴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가에 상관없이 어머니의 초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호소력을 지닌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녀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헌신하는 존재, 어머니. 그 어머니들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림에 대한 소질을 발견한 후에는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분들이었다. 어머니의 희생과 성심, 그리고 내조와 이해가 있었기에 자녀들은 꿈을 이룰 수 있었고, 그들은 그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어머니를 표현하고자 했다.
어머니는 여자 이상의 존재이다.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이야기는 힘든 시절,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 어머니의 본질은 사랑이다. 화가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그렸지만, 그 안의 어머니는 실상 우리의 어머니인 것이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자녀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이 곁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