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ㅣ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지데일리 한주연기자> 여기 동네 시립도서관에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청년이 한 명 있다. 매일 다니는 도서관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 남자는 며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 어찌하면 좋을지 인터넷에 묻는다. 

현명한 누리꾼 동지들이 댓글로 달아놓는 조언의 대세는 대략 이러하다. “우선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합격부터 해라. 괜히 지금 연애 시작해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서로 망하는 수가 있다. 그 여자 분도 당신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남자라면 더 마음 놓고 사귀려 할 것이다.” 

년은 이 진심어린 충고를 듣고 잠시 머리를 산란하게 했던 연애프로젝트의 거대한 막을 스스로 내린다. 상대를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포기한다.


왜 청년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야성의 사랑학≫은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더 이상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무작정 다가가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고, 차 한 잔 하고 싶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그녀 앞을 막아서고 싶은 돌발적 충동을 이성으로 누른 채 ‘싸이질’을 통해 사전 탐색을 하고 서로의 스펙을 맞춰보며 연애를 할 지 말지를 오래오래 저울질한다.


마치 식물 상태에 빠진 것과 같은 지금 우리들의,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왜 한국의 젊은이들은 생물학적 연애충동마저 손상 입은 채 이토록 방전돼 버린 걸까?


구제금융(IMF) 이후 경제적 불안이 삶을 어떻게 좀먹어 들어가는지를 혹독하게 학습했던 세대들에게, 아무리 젊음을 무기로, 미친 듯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에 화답해보라고 충돌질해도 사랑이란 모험을 향한 이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법이다. 


연애는 ‘스펙쌓기’라는 이 시대의 의무로 인해 뒷전으로 밀리고 생존의 뒷덜미가 잡힌 비정규직들에게 연애란 진열장 속의 호화로운 보석일 뿐, 사치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 한 조각이 감옥 하나를 줄인다는 진리를 섬뜩할 만큼 간결한 방식으로 표현한 사람이 있다. 신창원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그 주인공이다. 신창원이 탈옥 후, 털어놓은 고백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 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쌍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사랑 한 조각이 없어서 악마가 되는 사람이 있다.


책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랑을 방해하는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지은이 목수정은 사람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이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간이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전 방위적인 사회적 조건들, 가부장적 권위주의, 위선적 도덕주의, 영혼을 갉아먹는 경쟁주의, 일등 제일주의 등 억압적 조건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그는 이러한 현실이 우리 시대가 현재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인 ‘연애기능장애’라고 진단한다.

 

젊은 남녀간 사랑 뿐 아니라, 엄친아, ‘엄친딸’에 갇히고 입시에 유예당한 10대들의 성과 사랑, 거세된 채 제3의 성으로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 흔히 사랑이라고 ‘학습당한’ 효라는 이름의 부모-자식간의 사랑,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단위인 부부간의 사랑, 생명의 근원이자 사랑의 원천인 어머니 대지에 대한 착취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사랑’을 통해 한국 사회를 뒤집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지은이는 “너저분한 규범, 도덕, 관습으로부터 해방되고 또 해방되어 인간이 가진 ‘야성’을 회복하라”면서 “이것만이 우리의 삶을 환희로 충만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을 변혁하는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은 사랑에 빠지는 것.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껍질을 깨부수고 나오게 하고, 솔직하고 대담하게 지금까지 지녀 왔던 가면을 벗게 한다. 사랑은 따라서, 철저히 체제 전복적이다. 사랑은 기존 질서에 위협을 가한다. 특히 사랑에 빠진 남자는 그들이 지녀야 할 군림하는 자로서의 소명을 잃어버릴 공산이 크다. 구애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주로 남자이나, 그 구애를 허락하고, 남자로 하여금 사랑에 눈이 멀도록 유혹하는 것은 주로 여자의 역할이다.


책은 불안에 잠식당한 영혼, 삶의 무게로 인해 거세된 열정, 머리털을 깎인 삼손처럼 신자유주의의 모럴에 무력화된 야성, 이것이 현재 한국 젊은이들의 현주소임을 지적하고, 사랑을 방해하는 사회의 실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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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사랑학

저자
목수정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0-09-2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그녀가, 연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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