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이란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무 것도 더 없앨 것이 없는 상태이다.” - 생택 쥐베리.


사진_슬로 이즈 뷰티플ㅣ쓰지 신이치 지음ㅣ권희정 옮김ㅣ일월서각 펴냄.jpg 미국의 여성 인구학자인 도넬라 메도우즈는 ‘나무늘보클럽’ 홈페이지에 실린 글에서 환경운동가들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아직 언급하지 않은 것 한 가지로 ‘슬로잉 다운’을 들고 있다. 산다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먹고 배설하고 자고 아이들과 놀고 사랑하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지금 자연과 인간은 산업사회가 휘두르는 시간의 채찍에 내몰려 이전의 생태계 흐름 속에서 천천히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 수인과 같은 신세가 돼버렸다.


≪슬로 이즈 뷰티플≫은 문화인류학자인 메이지가쿠잉대학의 쓰지 신이치 교수가 지난 1990년대 일본에서 시작한 슬로 라이프 운동을 종합한 선언문으로 ‘슬로(slow)’를 키워드로 하고 있다.


책은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고민으로 내놓은 한 문화인류학자의 21세기 문화인류학의 ‘출발서’다. 지은이는 나갈 길이 없는데도 들어오게만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가르쳐주지 않는 불친절한 ‘입문서’가 아닌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가 어디인지를 묻고 있다.


지은이는 목소리를 높인다. “속도를 줄여라! 그리고 뺄셈을 배워라!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방향을 틀어 슬로 이코노미, 슬로 테크놀로지, 슬로 푸드, 슬로 디자인, 슬로 보디, 슬로 러브를 상상하라! 자기 부정과 자기 증오라는 저주로 가득 찬 현대사회에 우리 자신을 지키는 주문이자 처방전, 그것이 바로 ‘슬로 이즈 뷰티풀’이다.”


지은이는 ‘느리다’와 ‘천천히’로 해석되는 ‘슬로’라는 단어에 ‘생태적(ecologigical)’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절망만을 안겨주는 속도사회에 맞서 느리게 사는 삶의 가치와 그 속에 담긴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의 슬로 라이프 선언은 현대인의 상식과는 다른 방향에서의 경제, 과학, 식생활, 예술, 신체, 나아가 사랑의 방법 등 전 분야에 걸쳐 상상하는 삶으로서의 자유라는 화두를 던진다. 바로 슬로 이코노미, 슬로 테크놀로지, 슬로 푸드, 슬로 디자인, 슬로 보디, 슬로 러브 등이 그것이다.

 

미국 흑인들이 외친 “블랙 이즈 뷰티풀”에서 따온 ‘뷰티풀’이란 단어 역시 지은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도 자랑하지도 않고 그대로 보듬어 안는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보고 있다. 그는 우리 자신이 전통적 삶의 방식과 자연관, 인간관 등을 하루아침에 낡고 뒤쳐진 것으로 치부하여 폐기해버리고, 그 잔해 위에 ‘풍요로운 사회’라는 괴물을 낳아 놓았으며, 그로 인해 우리 시대는 자기 부정과 자기 증오라는 저주에 가득 차게 됐다고 진단한다. 때문에 그는 그 저항의 주문으로서 ‘슬로잉 다운(slowing down)’, 속도를 늦추라고 거듭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사람의 키에 어울리는 속도와 페이스가 있듯 문화에도 그 크기와 속도에 어울리는 규모와 페이스가 있다.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정한 박자의 완급이 있고, 사람의 신체적인 모습에도 그리고 사회적인 모습에도 그것에 어울리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 전통사회에서의 기술은 크기와 속도와 힘의 한도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스스로 균형을 잡고 조절하고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란 바로 이러한 조절과 정화와 힘을 우리가 사는 사회에 가져다주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불문율, 도덕, 의례, 신화, 연장자들의 정겨운 옛날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또 자연환경의 위기란 어라한 사회 안에 작동하고 있는 문화적 매커니즘의 파괴, 즉 문화의 작음과 느림의 상실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문화를 성장시키고 풍성하게 했던 그 느림이 없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대로 방치하고만 있어야 할까? 전통사회에서 생활기술의 역사는 몇 백 년에 걸쳐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오면서 천천히 갈고 닦아 만들어졌다. 지은이는 이 느림이 바로 문화의 본질이라면서 이제부터는 덧셈식 발전이 아닌 뺄셈식 발전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움직이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그러는 사이 ‘멈추는 것’에 대한 가치를 잊어가고 있다. 문화의 본질은 작고 느린 것이다. 무한성장 신화를 숭배하고 있는 현대인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문화의 작음과 느림의 상실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은이는 “우리는 다시 한 번 멈추는 것에 대해 새롭게 배워야하거나, 적어도 ‘좀 더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