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과연 평화롭고 안전한, 그리고 편안한 집에서 살고 있는가?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사진_집은 인권이다ㅣ주거권운동네트워크 지음ㅣ이후 펴냄.jpg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가 넘고, 100만 채의 집이 남아도는데도 국민 열 명 가운데 4명은 남의집살이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 나라에는 비닐하우스와 쪽방, 반지하, 옥탑, 심지어는 동굴에서까지 살아야 하는 주거 극빈층이 2008년 현재, 무려 162만 명에 이른다. 혼자 1083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2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이삿짐을 싸야 하는 이도 있다. 도대체 왜…?

 

집주인들은 주택 임대차보호법에 명시된 세입자의 권리를 밥 먹듯이 어기는데도 죄책감 따위는 모르쇠하고, 세입자들은 집을 옮길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한 달도 빠지지 않고 바지런히 모은 청약통장은 시간이 갈수록 내 집 마련의 꿈과 멀어지기만 한다. 더 좋은 주거 환경을 위해 개발한다는 건설 자본과 개발 당하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는 번번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는 집을 돈 주고 사는 사유 재산으로 보기 전에, 누구나 등 따뜻하게 살 권리를 충족시키는 보편타당한 공공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집은 인권이다≫는 주거를 하나의 ‘권리’로 행사하자고 주장한다. 지은이 ‘주거권운동네트워크’는 책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리는 것은 어떤지 제안한다.


“모든 사람은 살 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내 집’은 어떤 집인가?

비 올 때마다 떨어지는 물 받느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집, 들어가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 내 발로 나가기 전에는 누구도 쫓아내지 못하는 집, 대출금 갚느라, 월세 내느라 하고 싶은 일 미루지 않아도 되는 집…. 그래서 집은 인권이다.”



여성이라고, 장애가 있다고, 혼자 산다고 해서 집이 필요 없지는 않다. 재산이 없다고, 소득이 적다고 집이 필요 없는 것도 아니다. 지은이가 필요한 만큼,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돈이 없다고 먹지 못해 굶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집 또한, 주거 역시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권’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 때문이다.

 

책은 주거 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살 만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팔릴 만한’ 집을 짓는 건설 자본은 물론,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무슨 경제를 살리는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국가의 자세 역시 틀렸다고 말한다. 집을 소유하고도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하우스 푸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집’ 자체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일의 집 때문에 자신의 오늘을 저당 잡힌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책은 특히 왜 집이 ‘돈’이 아니라 ‘권리’와 함께 이야기돼야 하는지, 어째서 “집이 인권이다!”고 목소리 높일 수밖에 없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매년 10월 첫째 월요일은 ‘세계 주거의 날’이다. 올해는 10월4일이다. 1985년부터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 주거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유엔 인간정주회의UN-HABITAT’에서 제정한 날이다. 주거권운동네트워크는 2008년의 주거권 선언 <집은 인권이다!>에 이어, 올해에는 강제 퇴거 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주거권 선언― 집은 인권이다!>


“모든 사람은 살 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1.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던 땅이나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을 때까지 살 권리가 있다. 누구도 강제로 쫓아낼 수 없다.

2. 모든 사람은 적정 수준의 주거비 부담으로 살 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3.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 상관 없이 적당한 수준의 집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건강을 해치지 않을 쾌적한 주거 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5. 모든 사람은 각종 시설들을 이용하기에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6. 임대 아파트나 비닐하우스촌, 쪽방 등에 산다는 이유로, 혹은 집이 없어 거리에서 잔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국적, 인종, 성별, 장애, 나이,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집을 구하거나 집에서 살아가는 데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7. 살 만한 집에 살 권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집을 짓는다는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는 마구잡이 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

8.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및 주택 정책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