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의 표정을 모방한다. 부모가 웃으면 함께 웃고, 인상을 쓰고 있으면 따라서 얼굴을 찡그리다가 금세 운다. 100일 정도가 지난 아기들은 부모의 말과 표정을 따라하며 옹알이를 하고 부모를 따라 입 안에서 혀를 차기도 한다. 또 돌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말을 배우면서 부모의 언어와 행동을 모방한다.


사진_밈ㅣ수전 블랙보어 지음ㅣ김명남 옮김ㅣ바다출판사 펴냄.jpg 거의 모든 인간에게는 ‘탁월하고 보편적인 모방 능력’이 있다. 이러한 모방을 통해 언어와 몸짓, 행위 등을 학습한다. 책을 읽거나 요리를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책을 펼쳐들고 소꿉놀이를 한다. 춤추며 노래 부르는 가수들을 보면서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든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주는 부모를 보면서 자신도 따라 종이를 접어 본다. 이런 모방을 통해 아이는 학습을 하고, 두뇌를 성장시켜 나간다. 또 아이가 또래 아이를 만나 소꿉놀이를 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이런 행위들은 다른 아이에게로 전달된다.

 

이런 일련의 모방을 통해 부모에게서 아이로,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에게로 전달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밈(Meme)’이다. 이렇듯 요리, 춤과 노래, 그리고 종이비행기 접기 밈은 모방을 통해 부모에서 아이로 전해진 뒤 아이의 또래집단으로 전해진다.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생명을 유지해 간다.


≪밈≫은 세계적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시킨,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 복제자 밈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 특히 인간의 뇌는 물론, 의식과 자아까지도 밈을 통해 생산됐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모방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내게로 무언가가 전달된다. 그 ‘무언가’는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고,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렇게 계속 전달되면서 저만의 생명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을 발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지침, 행동, 정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 그것을 연구하고자 한다면 우선 이름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이름이 있다. 그것이 ‘밈meme’이다.



밈학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 역사에서 최고의 전환점은 우리가 서로 모방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또 그 순간 제2의 복제자인 밈이 탄생했다. 밈은 모방을 통해 탄생하고, 모방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다. 모방을 통해 끊임없이 복제되면서 힘을 키워 간다.

 

인류 역사에서 농경이나 도구 제작, 춤과 노래 등 한 가지 기술이 퍼지기 시작하자 이를 습득하고 ‘모방’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들 대부분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기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최고의 모방자를 모방하라’이고, 짝짓기에서도 이것은 유지됐다. 훌륭한 모방자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더 나은 모방 능력을 향한 선택압력이 작용한 결과 밈 확산에 필요한 큰 뇌가 더욱 절실해졌을 것으로 유추된다. 뇌를 거대하게 키워야 한다는 자연선택의 압력은 밈에 의해 탄생하고 추진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문화는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무언가가 발명되고 전파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인간이 새로운 문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전파하고 확산한 주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발명은 무에서 홀연히 솟아나는 게 아니라 이전의 발명들에 의존한다. 인간은 굴러가는 돌을 보고 바퀴를, 나뭇가지를 건너는 개미의 모습을 보면서 다리(교량)를 만들었을 것이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언어 능력이라는 본능이 작용했겠지만, 끊임없이 음성 신호를 모방하고 모방하면서,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변이를 거치면서 언어는 더욱더 정교해졌을 것이다.

 

밈학에서는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이기적 복제자’ 개념을 제시한다. 즉 생명의 진화가 생명 자체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활동하면서 생겨난 결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시각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이 자신들을 위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기적 복제자인 밈이 스스로의 성장과 생명을 위해 활동한 결과 지금의 인간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문화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은 간단하게 정리된다. 인간은 문화를 발전시켜 오지 않았다. 오로지 밈이 자신을 위해서 인간을 도구로 삼아 끊임없이 전파, 확산되면서 지금의 문화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도킨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생물계의 창조적 업적들이 모두 유전적 진화의 산물이듯이, 인간 문화의 창조적 업적은 모두 밈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성행위는 기본적으로 번식을 위한 행동이다. 즉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유전자의 추동에 따른 욕망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는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다. 효과적인 피임법을 개발한 이후 사람들은 번식의 위험을 줄이고 성행위 그 자체에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감각적 쾌락 이외에 (번식을 전제하지 않는) 인간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이론이 답을 할 수 있을까? 밈학은 여기에 색다른 답을 제기한다. 즉 현대의 성적 행위를 이끌어가는 것은 밈이라는 주장이다.


밈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경험과 소유물을 물려주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밈을 퍼뜨릴 절호의 기회다. 따라서 자신의 전파와 확산을 지상과제로 삼는 밈은 인간의 성적 행위를 여러 방식으로 다양하게 이용한다. 섹스는 친밀함을 뜻하고, 친밀함을 밈을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섹스는 밈을 마음껏 확산하고, 통제하고, 조작하게 해주는 멋진 신세계다.


이타적인 사람은 인기인이 된다. 인기 있기 때문에 모방되고, 모방되기 때문에 그의 밈은 덜 이타적인 사람의 밈보다 더 널리 퍼진다. 이것이 이타적 행동의 확산 메커니즘이다. 이타적 행동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나는 모두를 뭉뚱그려서 말하고 있지만, 가령 너그러움, 친절함, 배려 등으로 나눠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성질을 지닌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그를 모방하고 그의 밈을 받아들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면 모두 해당된다. 이타성 밈이 이렇게 기능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 사람들이 모방을 한다는 것, 둘째, 사람들이 이타주의자를 더 많이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타성은 자신을 희생해 다른 생물체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즉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 노력,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에서 인간의 이타적 행동은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명이 있는데, 하나는 겉보기에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실제로는 자기 유전자의 이득을 꾀한다는 설명과 인간에게 특유의 도덕적 본능이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밈학은 세 번째 가능성을 제공한다. 즉 이타적인 사람은 인기가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그 행위가 모방되고, 결국 그의 밈이 다른 사람보다 더 널리 퍼진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의식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모든 행동은 밈과 유전자와 그들의 모든 산물이 복잡한 환경에서 복잡하게 상호작용함으로써 생겨난다. 우리의 유전적 과거와 밈 과거가 현재의 환경에서 빚어낸 산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새로운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