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으며 특히 개인의 마음가짐과 행복을 다루고 있는 <명상록>. 함께 사는 세상에서의 ‘덕’과 자연의 이치, 처세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 <도덕경>. 이 두 철학 고전이 말하는 성공과 삶을 통찰하는 처세의 지혜는 무엇일까?


사진_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ㅣ후웨이 홍 지음ㅣ이은미 옮김ㅣ라이온북스 펴냄.jpg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는 고전이자 서양 철학의 뿌리인 <명상록>과 시공간을 초월한 삶의 지혜를 담아낸 <도덕경>에서 간추린 성공과 처세의 지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셀프 리더십의 고전 <명상록>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고 깨우쳐 올바른 길을 찾고자 한, 황제 개인의 치열한 고뇌와 사색의 결과물이다. 삶에 대한 혜안과 인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씌어진 <명상록>은 권력보다 철학을 사랑한 철인 통치자의 웅숭깊은 육성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큰 울림과 깨달음을 전해주는 귀한 고전이자 명저로 알려져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성경>을 제외하면 세상의 그 어떤 책보다도 많이 번역된 전 세계적인 책으로, 고결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고, 균형 있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한 지혜로 가득한 책이다. 또 중국 문화의 3대 기둥으로 심원한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세계 각국으로 전해져 세계 문화, 특히 서양 문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도덕경을 읽지 않으면 중국 문화를 알지 못한다”고 극찬했으며, 미국의 저명한 학자 포극명은 “노자의 도덕경은 미래 이상 사회의 공통 명저가 될 것이다”고 공언한 바 있다.


사람은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을 살고자 하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나 잃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삶이 아니라 지금 지나가는 자신의 삶이며, 누구나 지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삶이 아니라 지금 소멸되어가는 자신의 삶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긴 삶이거나 가장 짧은 삶이거나 결국에는 같다. 한 사람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즉 사람이 오직 현재만을 소유한다면, 소유하지 않은 것은 잃을 수도 없다.



노자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두 선각자는 모두 보이지 않지만 거스를 수 없는 힘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전자는 그것을 ‘도’라 칭했고, 후자는 ‘우주의 이성’ 혹은 ‘자연법’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힘에 순응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그들이 추구한 진리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또한 이들의 시선은 모두 인성의 가장 아름다운 일면, 즉 순진함, 자연, 사랑을 향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노자는 여기에서 출발해 ‘도’로써 사람을 키우고 자연스러운 사회, 덕스러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정치이념을 이끌어냈다. 즉, 고귀한 도덕적 감정으로 남과 나의 관계를 살피고, 한적한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누리고자 했다. 이에 비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마음에서 우러난 완벽한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자기수양의 이념을 이끌어냈다. 즉, 고귀한 도덕적 양심으로 자신의 품성을 빚고 우아한 마음가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남과 나의 구분을 강조하지 않았으니, ‘인아불이(人我不二)’의 경지에 통달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생각을 분명히 하고 훌륭하게 표현해낸다면, 말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모두 기쁨이 될 것이며, 당신이 입을 열면 상대방은 정신을 집중해 경청할 것이다. 만일 당신의 생각이 분명치 않다면 입을 다물고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라. 자신은 흐리멍덩하면서 어찌 상대방이 당신을 이해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분주한 것 역시 생각이 분명하지 않고 방법이 정당치 못하기 때문이다.



책은 고전의 위대함을 깨닫고 기본으로 돌아가 고전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인 현실에서 두 고전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어 인생의 행복과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