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2.0이 등장한 이래 국가와 시장, 시민 사회의 운영 통치 시스템이 바뀌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 교환, 의견 결집, 개인 혹은 집단의 정치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등 쌍방향 소통을 통해 참여자 모두가 주체가 돼 공동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_디지털 거버넌스ㅣ조화순 지음ㅣ책세상 펴냄.jpg 이처럼 가상공간의 시민과 비정부 행위자의 등장을 인정하며 정부 역할의 축소와 보다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회 운영 메커니즘의 확대를 지향하는 것을 ‘디지털 거버넌스’라고 한다. 이는 디지털 기술 융합에 기반을 두고 사회를 운영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다. 정보 사회의 새로운 통치 질서는 단순히 국정 운영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민・정부・기업이 공동체의 앞날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정치・사회・경제 운영 메커니즘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디지털 거버넌스≫는 웹 2.0 시대의 디지털 네트워크와 그 안에서의 권력 이동을 다루고 있다. 즉 디지털 거버넌스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되는지를 한국 사회를 중심으로 살펴보며, 디지털 사회의 권력의 작동 방식과 새롭게 설정되고 있는 국가・기업・시민 사회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개인이나 기업 혹은 정부가 권력을 장악하려고 투쟁을 벌이는 공간인 인터넷은 권력의 분산과 권력의 집중이 동시에 나타나는 곳이다. 인터넷의 다양한 소통 채널은 기존 권력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정보 독점의 해체에 따른 권력 분산을 동반한다. 이처럼 정보 기술의 발달은 권력의 내용과 작동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권력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은이 조화순은 인터넷과 디지털 거버넌스가 가져올 우리의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지도, 그렇다고 그 가능성을 폄하하지도 않는다. 결국 디지털 사회의 이상은 디지털 기술의 이용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이용해 생산해내는 새로운 질서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책은 디지털 거버넌스의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서 현재 디지털 사회의 운영 방식과 발전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동시에 어떤 담론과 구조 속에서 국가, 시장, 사회의 주요 행위자들 간에 첨예한 논쟁과 갈등이 생산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이러한 사유와 통찰은 곧 우리 사회의 자유와 평등, 새로운 공동체의 미래와 닿아 있다.


인터넷이 가져오는 국가, 시민, 기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어떤 운영 메커니즘이 필요할까?


디지털이라는 기술적 요소와 거버넌스라는 정치와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이 결합해 만들어진 용어인 ‘디지털 거버넌스’는 친숙하지만 충실히 이해된 적 없는, 까다로운 개념이다. 흔히들 오해하듯 디지털 거버넌스는 정부 업무를 전산화해 정책을 수행하는 전자 정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자 정부는 정보 기술을 국가 행정 업무의 수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민이 원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제공하는 정부를 말한다.


반면 디지털 거버넌스는 효율성을 넘어 민주적인 결정을 지향하며 국가, 기업, 시민, NGO 등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서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차원의 세계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통치의 메커니즘이다.


디지털 거버넌스는 비효율적인 관료제와 행정 편의주의라는 정부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국제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케인스주의적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복지와 시장에 개입하면서 초래된 정부 내부의 비효율성을 발전된 정보 기술로 이겨내고자 한 것. 그러나 지은이는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시민들의 참여 범위의 확대와 질의 향상을 자동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며 섣불리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야누스처럼 상반된 두 모습을 지니고 있어 이용자의 행태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디지털 거버넌스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정보 제공 자체가 참여의 증가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맞춤형으로 제공된 인터넷 정보가 오히려 시민을 비정치적・비공동체적 문제에 집중 시키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기술은 정치와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참여를 자극하지는 못하며 참여를 일정 정도 증가시켜도 성과가 제한적이다.


사이버 상거래와 같은 가상 시장의 발달은 주권 국가들의 전통적인 영토적 주권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상품 거래가 이뤄지면서 전통적인 시장 거래와는 다른 절차와 방식이 생겨난 것. 지은이는 독점적 포털 기업과 저작권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통해 ‘시장 2.0’의 구조적 변화를 드러낸다. 독점적 포털은 기존 언론 권력 이상으로 시민들의 앎과 자유를 침해하며 한 사회의 담론과 문화를 조작할 힘을 지니고 있다며 기업의 자율성이 곧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을 비판한다. 또 현재의 저작권 보호법은 기술과 정보를 독점하는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강화하고 있다며 참여적이고 숙의적인 디지털 거버넌스의 성립을 위해 지나친 저작권 강화 추세가 과연 바람직한지 묻고 있다.


UCC, 블로그, 트위터의 등장은 시민들이 기존의 매스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채널을 통한 시민들의 조직적 의제 제기와 집단행동은 정부와 시장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지은이는 정부와 시장, 시민이라는 디지털 권력의 세 층위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터넷 공간 블로그는 태그, RSS, 트랙백 같은 참여의 구조를 통해 교류와 소통을 증진시키고 있다. 이 참여의 구조를 통해 새로운 시민적 주체가 나타나는 바, 지은이는 ‘시민 2.0’의 정체성을 디지털 유목민,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프로슈머, 그리고 다중으로 규정한다. 새로운 시민적 주체가 현재의 시장과 정치의 메커니즘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디지털 권력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며 시민과 국가, 시장이 서로 소통하고 협의하는 디지털 거버넌스의 목표를 일깨우고 있다.


지은이는 디지털 거버넌스가 국가가 배제된 시장의 자율 관리나 시민 사회의 자율 관리 체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중들의 자율적인 상호 교류를 통해 지식이 생산되고 디지털 거버넌스는 이렇게 생산된 정보와 지식을 새로운 사회와 경제의 메커니즘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키피디아’의 사례에서 보듯이 다중의 정보와 지식은 언제나 임시 버전이며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여기서 집단 지성이 보여주는 자율성과 창조성은 새로운 기업 경영의 화두가 되고 있다.


지은이는 그러나 인터넷 공간 역시 권력과 시장 밖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가 역시 인터넷 공간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다른 국가, 다른 행위자들과 경쟁하고 있으며 시장은 개인 정보 유출이나 전자 상거래 사기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통제 메커니즘과 시장 통제 메커니즘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는 일이라면서 디지털 기술의 활용에 대한 논의의 초점은 국가 권력을 어떻게 견제하고 시민 사회의 권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놓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삶과 사회가 펼쳐질지는 이 균형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