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습, 두습, 사릅, 나릅…, 낯설게 들릴 수 도 있겠지만 이는 순우리말로 마소나 개의 나이를 가리키는 어휘들이다.


사진_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ㅣ장승욱 지음ㅣ하늘연못 펴냄.jpg 그제, 어제, 오늘, 내일, 모레, 글피, 한데 이중 유독 ‘내일(來日)’만은 왜 한자어일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우리말은 없는가 하는 의문을 품은 적은 있는지? 답은 ‘올제’다. 때문에 어제, 오늘, 내일, 모레, 글피가 아니라 어제, 오늘, 올제, 모레, 글피로 써야 올바른 우리말 표기가 된다.

 

익혀 두고 새겨 두고 앙구어 뒀다가 실생활에 적용할 만한 우리말 도사리들을 몇몇 더 열거해 보자. 순우리말로 외양만 차리고 실속이 없는 사람은 ‘어정잡이’, 못된 짓을 하며 마구 돌아다니는 사람은 ‘발김쟁이’, 조금도 빈틈이 없이 야무진 사람은 ‘모도리’, 제멋대로 짤짤거리고 쏘다니는 계집아이는 ‘뻘때추니’라 한다. ‘꽃잠’은 신랑 신부가 맞는 첫날밤의 잠, ‘사로잠’은 불안 때문에 깊이 들지 못한 잠, ‘단지곰’은 무고한 사람을 가둬 억지로 자백을 받아 내는 일, 국이나 물이 없이 먹는 밥은 ‘강다짐’, 남이 먹다 남긴 밥은 ‘대궁밥’, 반찬 없이 먹는 밥은 ‘매나니’라 한다. ‘도리기’는 여럿이 추렴하여 나누어 먹는 일, ‘시게전’은 곡식을 파는 저자, ‘바라기’는 ‘보시기’보다 입이 훨씬 더 벌어진 반찬 그릇을 말한다. ‘드팀전’은 피륙을 파는 곳, 건어물 가게는 ‘마른전’, 반대로 말리지 않은 어물을 파는 곳은 ‘진전’, ‘배동바지’는 벼가 알을 밸 무렵, ‘새물내’는 빨래해서 갓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를 뜻한다.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은 우리 삶과 관련된 의식주, 생활도구, 언어습관, 자연환경, 나아가 사람과 세상살이 속에 깃들여 있는 겨레말의 어휘와 그 풀이를 담고 있다. 자못 잊혀져 가거나 잘 모르기에 제대로 쓰지 못했던 아름다운 우리말의 올바른 쓰임새와 그 가치를 전한다.


책의 표제에 쓰인 ‘도사리’는 익는 도중에 바람이나 병 때문에 떨어진 열매를 가리키는 순우리말, 한자로는 낙과(落果)라고 한다. 지은이 장승옥은 십 년 넘게 이른 새벽 과원(果園)에 나가 이들 도사리들을 줍는 심정으로 순우리말 2만5000여 개의 어휘를 모아 우리말의 본뜻과 속뜻, 그것들의 올바른 쓰임을 전한다.


잡살전, 바리전, 엉너리, 야마리, 개호주, 능소니, 굴퉁이…, 듣는 이에 따라 생경하게 여겨지겠지만, 이를 풀이하면 잡살전은 씨앗을 파는 가게, 바리전은 놋그릇 파는 가게, 엉너리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벌쩡하게 서두르는 짓, 야마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개호주는 호랑이의 새끼, 능소니는 곰의 새끼, 굴퉁이는 겉은 그럴 듯하나 속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제껏 모르기에 올바로 써보지 못한 생소한 우리말 어휘들, 또는 알고는 있지만 이때껏 그릇되게 사용해 온 순우리말 어휘들의 세세한 풀이를 통해 이 책은 우리말이 주는 깊은 정감과 녹록찮은 겨레얼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책의 꾸밈은 크게 ‘도사리 편’(알기 쉬운 설명을 담은 순우리말 뜻풀이글)과 ‘말모이 편’(갈무리한 순우리말 어휘사전) 두 갈래로 나뉜다.


어떤 일이 시작되는 머리를 첫머리, 들어가는 첫머리를 들머리, 처음 시작되는 판을 첫머리판이라고 한다. 어떤 일의 첫머리를 뜻하는 첫단추, 맨 처음 기회를 뜻하는 첫고등, 맨 처음 국면을 뜻하는 첫밗 같은 말들도 모두 일의 시작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일을 할 대강의 순서나 배치를 잡아 보는 일, 즉 설계를 하는 일은 얽이라고 하는데, 동사로는 ‘얽이친다’고 한다. 얽이에 따라 필요한 사물을 이리저리 변통하여 갖추거나 준비하는 일은 마련이나 장만, 채비라고 한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은 ‘징거둔다’, 여러 가지를 모아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은 ‘엉군다’, 안 될 일이라도 되도록 마련하는 것은 ‘썰레놓는다’고 말한다. 진행되는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는 일이 잡도리인데, 설잡도리는 어설픈 잡도리, 늦잡도리는 뒤늦은 잡도리다. 아랫사람을 엄하게 다루다가 조금 자유롭게 늦추는 일을 ‘늑줄준다’고 하고, 늑줄을 주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는 일은 다잡이라고 한다. 감장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힘으로 꾸려 가는 것이고, 두손매무리는 일을 함부로 거칠게 하는 것, 주먹치기는 일을 계획 없이 그때그때 되는 대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남의 일을 짓궂게 훼방하는 짓은 헤살이라고 하고, 돼 가는 일의 중간에 방해가 생긴 것은 ‘하리들었다’고 한다. 일이 돼 가는 형편을 매개라고 하는데, 매개가 제법 좋은 것은 ‘어숭그러하다’, 매개가 안 좋아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거나 포기한 것은 ‘반둥건둥했다’, ‘중동무이했다’, 일을 망쳐 버린 것은 ‘털썩이잡았다’, ‘허방쳤다’고 표현한다.



책은 냉대와 소외, 무관심 속에 퇴색해 가는 우리것 우리얼 찾기의 겨레말을 되살리고 있다. 온갖 외래어와 파생어와 인터넷 문자들이 속속 우리 일상어로 둔갑하고 또 상징 글꼴(code)로 자리잡을 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말을 밀어내고 있는 지금, 우리말 우리글을 더 잘 알고, 더 잘 쓰고, 더 잘 퍼뜨리자는 숨은 뜻과 열의를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