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일본을 앞서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머지않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때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 체제였던 세계는 이제 중국과 미국의 양강 구도로 개편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미국마저 넘어서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경우 세계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사진_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ㅣ마틴 자크 지음ㅣ안세민 옮김ㅣ부키 펴냄.jpg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은 중국의 미래와 이에 따라 변화될 세계를 올바로 조망하려면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울러 문명과 과거 역사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중국인의 특성이 앞으로의 국제 질서와 문화 확산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은이 마틴 자크는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서구에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가정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부상은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 한정될 것이고, 중국은 결국 서구식 국가가 될 것이며, 지금의 국제 질서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가정 모두 틀렸다고 말하면서, 그동안 세계를 좌우하며 자기들 중심으로 생각해 온 서구가 미래 중국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는 그동안 서구 사상과 가치관을 보편적이라고 여겼고, 서구식 국제 질서, 서구의 통화(달러화), 서구의 언어(영어)가 위력을 떨쳤다. ‘세계화’란 곧 ‘서구화’의 의미였다. 그러나 지은이는 중국이 부상해 새롭게 개편되는 세계에서는 이제 모든 것이 상대적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수렴’과 ‘발산’으로 설명한다. 그동안 세계가 서구식 질서로 ‘수렴’하고 동질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앞으로는 서구식 질서에서 벗어나는 ‘발산’ 작용이 일어나 각 지역이나 나라의 특성에 따라 토착화하는 흐름으로 바뀐다는 지론이다.


서구 세계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


책에 따르면, 서구에선 공산당 통치 국가인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부상할 경우 전쟁까지 터질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맞서는 대비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 세계가 값싼 소비재 상품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중국의 두 자릿수 성장률 덕에 원재료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 원재료 생산 국가들이 이득을 보게 됐다. 중국의 성장이 미치는 영향력은 나라마다 다르고 분명 중국의 부상으로 불리해진 국가들도 일부 있지만, 세계 대부분 지역이 유익한 결과를 얻었으며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미 동아시아 국가 대다수는 중국과 보조를 맞추려 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경제 성장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다자간 상호 자유무역주의를 받아들였으며, 10년 전만 하더라도 소원한 관계였던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하고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친밀한 관계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006년 11월 아프리카 48개국 정상이 참석한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의 제안 내용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중국은 아프리카와의 무역량을 2010년까지 두 배로 늘리기로 했으며, 아프리카 지원 금액도 2006년 기준으로 2009년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또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 확대, 아프리카산 무관세 상품 수 확대, 우대 차관과 우대 신용 대출 제공, 일부 국가에 대한 부채 탕감 등도 약속했다. 그 결과 중국은 원유 수입량의 31%를 아프리카에서 들여오고 있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석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으로 수출한다. 대(對)중국 최대 원유 공급국도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앙골라로 바뀌었다.


아프리카의 입장에서는 과거 자원 채취에만 관심을 가졌던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아프리카의 인프라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서비스 부문을 지원하는 중국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IMF와 세계은행처럼 서구의 경제 기구들이 자금 지원의 대가로 시장 개방과 기업 구조조정, 국영 기업의 민영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압력을 행사하는 데 반해, 민주주의의 실현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역할을 중시하는 중국식 모델이야말로 아프리카의 권위주의 정부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요소라는 것이다. 국가의 경제적 성공이 관건인 개발도상국들의 세계에서는 중국식 모델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은이는 중국이 그동안 세계 패권을 차지했던 서유럽이나 미국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국만의 차별성을 파악하기 위해선 중국을 ‘문명국가(civilization-state)’로 이해하는 중국인의 가치관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서구 국가들에선 국민들이 ‘국민국가(nation-state)’에 따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즉 오랜 중세의 봉건 질서에서 벗어난 뒤 상공업 발달을 배경으로 민족 중심의 근대 국민국가가 탄생한 이후에 생성된 정체성이다. 반면 중국인은 겉으로는 근대 국민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5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명국가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인은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규정하는 것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 신분이 아니라 ‘중국 문명’ 자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가 ‘중국 문명의 계승자’임을 자처한다. 이들이 ‘중국’을 언급할 때에는 국가뿐 아니라 역사와 왕조, 사고방식, 관습, 가족, 조상 숭배, 가치관, 철학 등 중국 문명의 요소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문명국가의 정체성에 의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중국 민족이 세계 제일이라는 중화사상이 끊임없이 고취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동안 중국인은 이런 가치관에 따라 인종과 민족의 서열을 매기고,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도 중국 중심의 ‘조공 관계’를 추구해 왔다.


중국은 문명국가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외에도, 오랫동안 유교 사상이 지배한 국가이고 1949년 이후로는 공산주의 정권이 통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동안 패권 국가들과 차별화된다. 지은이는 중국이 대륙 규모의 영토와 거대한 인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서유럽이나 미국, 혹은 근대화를 이룬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근대화의 속도가 지역별로 달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양면을 동시에 지니는 상황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