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엔 입만 열면 돈타령인 사람들이 있다. 또 계속 돈을 벌고 있는데도 계속 빚에 허덕인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상한 것은 돈 들어올 구멍이 아예 없는 ‘백수’보다,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는 정규직들이 더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진_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ㅣ고미숙 지음ㅣ그리비 펴냄.jpg 피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생의 의지를 헌납한 채 살아가는 정규직의 직장은 ‘삶의 터전’이 아닌 ‘죽어 가는 현장’이라고도 한다. 매달 돌아오는 ‘카드빚’에 허덕이며 살기 때문에 늘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은 충분히 벌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굶어죽는 아이들을 봐도, 쪽방에서 너무 덥거나 너무 추워서 혼자 죽어 간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가슴은 아프지만 기꺼이 나의 지갑을 열기에 내 수입은 아직 적다고 생각한다.

돈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다. 나의 통장에 실제로 얼마가 있는지, 내가 얼마를 버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돈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쓰는가가 돈과 나의 관계를, 나아가 내가 버는 것까지도 규정한다. 고액연봉을 받더라도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노예가 될 수 있고, 적은 돈을 벌더라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면서 저축까지도 할 수 있는 부자, 아니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돈’ 이야기를 다루면서,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있다.


“돈의 달인이란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돈에 ‘먹히지’ 않고, 돈을 통하여 삶을 창조하는 걸 의미한다. (…) 화폐는 탄생 이래 늘 공동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화폐가 공동체적 삶의 다양성을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 사회학자들은 코뮤니타스를 특별히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라고 명명하였다. 화폐의 ‘식성’에 맞서 삶의 창조성을 지켜 내고자 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실제로 돈이 없거나 부족한지, 부족하다면 얼마나 어떻게 부족한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고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평균 또는 합리적이란 이름의 덫에 걸려 명확한 것 하나 없는 ‘기준’에 삶을 잠식당한다. 지은이 고미숙이 실험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과 윤리를 가지고 삶을 살 때, 경제와 일상은 재구성될 수 있을까, 혹은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이다. 중요한 것은 단지 허구일 뿐인 돈에 대한 기준을 내려놓는 것과 우리 스스로 헐떡거리는 삶을 중지하고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우리 시대 사회적 관계는 쇼핑과 회식을 통해서만 구성된다. 뭔가 관계를 맺으려면 이 회로를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친구란,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그러니 늘 ‘돈 없어!’ ‘돈이 필요해!’를 연발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돈이 인생의 꿈이 되어 버린다. 꿈? 이 낱말은 부적절하다. 꿈이라면 그건 한바탕 악몽에 가깝다. 삶을 소외시키고 욕망을 소거해 버리는 끔찍한 악몽.” 



지은이가 책에서 돈의 달인 중 한 사람으로 꼽는 인도의 성자 비노바 바베(Vinoba Bhave)는 그의 동료에게 여행을 떠날 때 돈을 가져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돈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행 중 하루에 먼 길을 걸어 지치고 피곤하고 배가 고플 때, 끼니를 해결하고 하룻밤 묵어갈 숙소를 찾아야 할 때 만약 돈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냥 간단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없다면, 끼니와 잠자리를 제공해 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야 하고, 그런 간절함으로 겸손해지는 법,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이뤄지는 자본주의적 교환의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돈에 붙어 온 인과, 돈이 불러올 수많은 인연들을 생각하며 돈 앞에서 조금은 더 겸손해지고, 때로는 돈 앞에서 조금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유+너머’라는 공동체를 꾸려오며,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학자금을 지원해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면서 지은이는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투명함, 아무리 큰돈이라도 단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결단력, 돈 앞에서 절대 머리 숙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 존재의 크기를 증명했다.

 

지은이는 단순히 가난을 참고 견디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순진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개인의 존재가 서로에게 선물이자 순수증여가 되는 세상이 정착하길 바라고 있다. 이렇게 당당함과 겸허함으로 돈을 ‘제대로’ 쓸 것을 역설하며 실제로 하나의 세계가 순수증여와 선물로도 충분히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