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문화는 새로운 사상과 정신의 길, 문명의 길을 만들어낸다. 전근대의 동아시아는 서구를 훨씬 능가하는 기나긴 서적의 전통과 서적을 공유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장기에 걸친 서적의 공유ㆍ교류의 관계는 동아시아의 각 지역에서 다양한 서적 문화를 전개하도록 했으며, 각각 독자적인 지적 심화의 길을 연 커다란 원동력이 됐다.


사진_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ㅣ동아시아출판인회의 기획ㅣ한길사 펴냄.jpg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은 20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간행된 명저와 문제작, 즉 동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인문서 100권에 대한 해제집이다. 지난 2009년 전주에서 열린 제9회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서 최종 발표된 ‘100권의 책’에 대해 한국과 중국, 홍콩, 대만, 일본 등지에서 각각 필자를 섭외해 해당 도서의 해제를 작성하고, 상호 번역해 3개 국어로 동시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을 엮은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한・중・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100권의 책을 집중 독서하고, 그로부터 동아시아 사상과 이론을 학습하고 담론하는 동아시아 독서대학을 구상했다. 해당 저서의 작가나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직접 특강에 나섬으로써 전문성을 높이고, 서울대학, 도쿄대학, 베이징대학 등 각국 유수의 대학들과 협력하여 정규 커리큘럼을 만들어 일반인들의 관심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일찍이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서적의 공유ㆍ교류의 관계를 ‘동아시아 독서공동체’라고 명명하고, 동아시아의 편집자·출판인으로서 타국ㆍ타 지역의 독서인이 어떤 책을 읽어 주길 바라는지, 어떤 책이 반드시 전해져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 왔는지를 물어왔다. 이 책은 이러한 동아시아출판인회의의 일련의 활동에 대한 하나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일까? 100권이라고 하는 수를 각국·각 지역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와 함께 어느 시대의 책부터 선택할 것인가 하는 시기 구분이 우선했다고 한다.


근과거에 각국ㆍ각 지역의 인문서 출판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과 그 후의 혼란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길고 고단했던 군사 독재와 민주화 투쟁의 시대가 있었으며, 대만 역시 장기 계엄령 하에 있었다. 인문서 출판은 물론, 인문학을 유지할 토양조차 위협받았으며, 이를 유지하고 육성하기 위해 뛰어난 저자와 출판인이 갖은 고역을 겪어왔다. 한편 일본에선 고도경제성장에서 버블 경제와 그 붕괴의 과정 속에서, 시장주의와 효율주의가 인문서 출판뿐만 아니라 인문학 그 자체마저 침식하는 곤란한 상황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각국·각 지역의 근과거의 역사를 고려해 결론적으로 시기 구분은 과거 50년간을 중심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했다.


우선 책은 동아시아에서 공유돼야 할 서적을 선정한 것으로, 그 지역의 역사·문화·사회·예술·사상에 관련된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보편적인 과제의 소재를 명확히 한 책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일과성이 아닌 장기적·지속적으로 지적 영향을 미친 실로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한 책들이다. 전체적으로 각국·각 지역의 인문서의 커다란 흐름, 그 전개·발전을 통람할 수 있는 책들이다.


또한 현대에 필요한 인문서로서 ‘학술적 전문성’을 인정받은 책들이다. 계몽서·입문서에 한정하지 않고, 서로의 번역 출판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도 학술적 전문 가치가 높은 인문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하나의 강력한 문화운동이 되고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정치・경제의 현실적 문제들을 극복해내는 문명의 길이 돼 진정한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출해내는 하나의 기반이 된다는 명제 아래 만들어졌다. 동아시아인들에게 독서의 기쁨이 되고, 책 속에 담긴 동아시아의 인문 지식과 인문 정신의 깊이를 서로 접해봄으로써, 바람직한 문화 교류를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