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국민의 의무라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의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할게 많은 현실에 살고 있다. 그렇게 수 많은 의무가 주어지는 데 필요한 국가의 목적은 단 하나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가 제 의미와 본질을 잃고 왜곡된다는 점이다.


사진_너의 의무를 묻는다ㅣ이한 지음ㅣ뜨인돌 펴냄.jpg 그런데 의무가 아닌데 의무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걸까? 정말로 그 많은 의무를 다 지킨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는 진짜 이뤄지는 걸까?


<너의 의무를 묻는다>는 의무를 ‘의무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행복한 사회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앞서 ‘왜’ 의무를 지켜야 하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근로의 의무,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등 국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알고 있는 이른바 4대 의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의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러한 ‘의무’를 깨뜨리는 데 중심을 두고 있다.


우리는 진지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경제이고 무엇을 위한 번영인지에 대해 말이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쁩니다. 돈이 없고 시간도 없으니 건강을 제때 못 챙기는 건 당연합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료보험으로 보장되는 범위와 수준이 너무 협소합니다. 치료는 꿈도 못 꾸고, 일하고 들어와서 눕기 바쁩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온갖 고생을 감수합니다. 하지만 당장 하루하루가 절박하니 자녀들을 잘 챙겨 주지 못합니다. 적절한 교육 환경이 제공되지 않기에 자녀들의 성적은 좋지 않습니다. 남들 다 간다는 대학도 그림의 떡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대학 등록금 때문입니다. 결국 경제 번영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은 그렇게 계속됩니다.



책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기저에 깔고 있다. 경쟁과 허영으로 가득 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며 의무의 본질을 파악한다. 책은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태도라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진짜 의무를 생각해 보며 더불어 사는 사회의 근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없을 만큼 불리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값싼 모기장이나 의료 기구와 약품, 수도 시설만 있으면 쉽게 예방할 수 있는 병인데도 환경이 너무 열악한 것이지요. 이들은 병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죽어갑니다. 또한 생존에 필요한 식량조차 부족해 굶어 죽기도 합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며, 자연환경의 극심한 변덕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깡패 같은 군벌들에게 시달리다가 삶을 마감합니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조직한 국제 구호단체들이 있습니다. 단체들은 우리가 내는 기부금으로 음식과 기본 의약품, 그리고 수도 시설을 제공하지요. 주어진 재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신뢰성 있는 단체를 선택하여 기부를 한다면, 연못의 어린아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권리와 의무는 사회 질서의 양면을 이루고 있고,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은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면서 의무와 권리의 관계, 민주주의의 한계, 외국인 노동자, 시민 불복종, 국제 원조, 기부 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책은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정의’와 ‘관용’ 등에 대한 갈구에 대해 집중하면서 보다 가깝고 친숙한 사례와 물음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새로운 소통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