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성공은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자기반성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을 촉발했다. 출구 여론조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많은 유권자들이 다른 어떤 현안보다도 ‘도덕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테러리즘이나 이라크 전쟁, 경제 상황 등과 같은 주요 현안을 제치고 도덕적 가치가 표심을 좌우한 것이다.


사진_왜 도덕인가ㅣ마이클 샌델 지음ㅣ안진환 이수경 옮김ㅣ한국경제신문 펴냄.jpg 또한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답한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민주당 후보 존 케리를 제치고 부시에게 표를 던졌다. 시사 전문가들은 당혹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CNN의 한 기자는 “어느 시점부턴가 우리 모두는 도덕적 가치 문제를 놓치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왜 도덕인가?>에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인 ‘도덕’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도덕’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 전통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분야가 도덕에 기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경제가 정치를 밀어냈고, 사람들은 정치가 다루지 못하고 있는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들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또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단계라고 말하면서,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세울 수 있음을 강조한다.


책에 담긴 평론들은 민주사회에서 도덕성의 의미와 본질, 그것을 둘러싼 논쟁을 다룬다. 나아가 공공생활을 움직이는 도덕적 딜레마와 정치적 딜레마를 탐구한다.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도덕’이라는 가치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도덕이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지은이는 “도덕적 딜레마를 피하려 하지 말고, 직면해서 고민하는 것이 곧 ‘정의’”라면서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공정한 사회적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지난 20년 동안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던 도덕적 현안들을 다룬다. 즉 복권과 도박, 광고와 상업주의, 소수집단 우대정책, 존엄사, 정치인의 거짓말, 낙태, 동성애자의 권리, 줄기세포 연구, 탄소 배출권, 범죄자 처벌, 관용의 의미, 시장의 도덕적 한계,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요구, 공공생활에서의 종교의 역할 등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는 이들 논의의 핵심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의문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의 자유는 도덕적, 정치적 삶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규범이지만, 과연 그것들이 민주사회를 위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기반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좋은 삶에 관한 올바른 정의 없이 공공생활에서 발생하는 난해한 도덕적 의문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책은 도덕적, 정치적 논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오늘날 도덕적 가치의 기반을 이루는 다양한 자유주의 정치이론들을 검토하고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한다. 도덕적, 종교적 이상에 의존하면서 다원주의의 책무도 보유하는 몇 가지 정치이론 사례를 소개하면서 시민의식과 공동체, 시민적 덕성을 강조하는 정치, 나아가 좋은 삶에 대한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씨름하는 정치에 대한 옹호론을 펼친다.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도덕적, 종교적 논의를 공공 광장에 끌어들이는 일은 편협과 강압을 야기한다”고 우려한다. 이 책은 실질적인 도덕적 논의가 진보적 공공목적과 부딪치지 않는다는 점과 다원적 사회라고 해서 시민들이 공공생활에 투영하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꺼릴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은 이와 함께 미국 정치의 전통을 전반적으로 되짚어보고 있다. 우선 ‘도덕적 가치’가 처한 곤경을 보여주며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거꾸로 행동하는 이유와 보수주의자들이 정치 논쟁에서 신앙을 언제나 독점해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본다. 이어 토머스 제퍼슨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사의 주요 논쟁을 짚어보며 어떻게 우리가 도덕적, 시민적 목소리를 잃어버렸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