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ㅣ마티 크럼프 지음 앨런 크럼프 그림ㅣ유자화 옮김ㅣ타임북스 펴냄 <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은 유쾌한 문체로 풀어낸 온갖 생물들의 은밀한 상호작용 이야기다.

 

동물, 식물, 곰팡이, 세균들이 펼치는 진기한 사건사고들

 

같은 둥지 친구를 위해 피를 게워내 주는 흡혈박쥐, 개미한테서 단물을 빼앗는 모기, 짝이 바람을 피우지 못하도록 교미 마개를 씌우는 파충류…. 이 책에서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 한쪽에는 이득이지만 다른 쪽에는 이득도 손해도 아닌 관계,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쪽을 희생시키며 이득을 취하는 모습 등이 모두 공개된다.

 

코스타리카 산속 개울가. 독특한 검은색과 노란색의 무늬를 가진 수컷 코스타리카할리퀸개구리(variable harlequin frog)는 암컷 등에 달라붙어 몇 주 동안이나 포접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암컷을 만날 흔치않은 기회를 꼭 붙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몇 주를 매달려 있느라 수척해진 수컷은 그렇다 치고, 암컷은 이 죽도록 무거운 짐을 어떻게 참고 있는 걸까?

 

사실 암컷은 참고 있는 게 아니다. 뒷다리를 들어 수컷을 떼어내려 애쓰고, 위아래로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게다가 떼어내는 데 성공하면 곧장 복수를 시작한다. 앞다리로 수컷 머리를 잡고 냅다 내려쳐 버린다. 참으로 속 시원한 장면이지만 사실 암컷의 이런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다. 수컷을 거부하면서 암컷은 가장 강하고 인내심 있는 짝을 얻는 것이다. 혹은 알 낳을 준비가 안 된 암컷이 에너지 낭비할 일을 피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개구리의 행동에서 남자의 데이트 신청을 끈질기게 거절하는 여자의 심리에 대해 힌트를 얻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은이 마티 크럼프는 “동물(인간을 제외한)들의 행동에 인간적인 특징을 부여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대신 세상 모든 생물들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모두가 예외 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암수의 대결 또한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임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수백 종의 생물들을 통해 상호관계의 네 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같은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다른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식물과 동물 간의 상호작용, 곰팡이·세균과의 상호작용이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생물이 등장하는 자연 속 실제상황이다.

 

일개미는 동료가 더듬이나 앞다리로 톡톡 건드리면 입에 먹이를 토해주고, 코뿔새와 난쟁이몽구스는 함께 사냥을 다닌다. 돌고래와 사람은 몇 대째 자녀에게 기술을 전수하며 함께 고기잡이를 한다. 이 문장 끝에 있는 마침표의 두 배 정도 크기인 응애는 벌새의 콧구멍에 무임승차하기 위해 완벽한 타이밍을 잡고 치타만큼 빨리 달린다. 문득 우리 몸에 뭔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느낌의 정체와 우리 체중의 10%를 차지하는 세균에 대해서도 밝혀진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는 ‘하찮은’ 생물들의 놀라운 힘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눈과 잣대로 다른 동식물의 세계를 감히 판단하려 들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동식물을 통해 무언가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책의 말미에서 독자들에게 미루나무 한 그루를 상상해 보길 권한다.

 

좋은 그늘을 제공하는 미루나무에는 수액을 빨아먹는 진딧물, 줄기에 구멍을 뚫고 수액을 먹는 매미충이 있다. 잎벌레와 잎말이나방은 잎을 갉아먹고, 딱정벌레는 나무껍질 아래에서 살아간다. 검은머리박새는 곤충을 잡으러 다니고, 포식성 풀잠자리 유충은 진딧물을 잡아 나무를 돕는다. 그러나 여기에 불도저를 끌고 인간들이 나타나면서 수많은 종들 간 상호작용에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멸종해가는 생물들만이 아니라 바로 소중한 ‘상호작용’의 세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