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여성을 ‘어머니’로 설계했을까? 여성은 자신이 낳는 모든 아이들을 기르려 하고 또 차별 없이, 조건 없이 그 모두에게 자애로울까?

 

어머니의 탄생ㅣ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ㅣ황희선 옮김ㅣ사이언스북스 펴냄 ≪어머니의 탄생≫은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한 이래 존재했으며, 존재하고 있는 모든 어머니이자 여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한 여성 과학자의 장대한 여정을 담고 있다.

 

30년 이상 현장에서 영장류 사회 생물학을 연구한 진화 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 더불어 세 아이의 엄마인 세라 블래퍼 허디(Sarah Blaffer Hrdy) 박사는 다양한 문화권의 인류 집단과 동물 사회를 분석해 엄마이자 여성(암컷)들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 책에 따르면, 1859년 찰스 다윈은 인간이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선택이라 명명된 점진적이고 무심하며 비의도적인 과정에 의해 진화했다고 제안하며 진화 이론을 생물계를 설명하는 가장 정합적이고 포괄적인 이론의 위치로 끌어올려 놓는 데 성공한다. 그 후 연이은 관련 연구서를 발표하며 인간 본성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견해를 19세기 지식 사회와 이후 세대 다윈주의자를 포함한 생물학 진영에 널리 퍼뜨린다.

 

그러나 다윈은 성적으로 수줍고 정숙한 여성과 자기희생적인 모성이라는 빅토리아 시대에 만연해 있던 가부장제적 편견과 도덕주의자들의 바람을 자신의 성선택 이론에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태초에 여성[암컷]을 스스로가 능동적인 행위자가 아닌 하나의 ‘자원’, 단일한 계층으로 무더기 취급해 버림으로써 진화 이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의 전체가 아닌 절반만을 포함한 반쪽짜리 이론이 되고 만 것이다.

 

지은이는 다윈주의에 드리워진 남성 편향적 관점을 걷어 내고, 그동안 누락돼 왔던 여성[암컷]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모성과 여성의 참모습을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조지 엘리엇과 끌레망스 루아예, 앙투아네트 브라운 블랙웰 등 초기 모계 혈통 다윈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19세기 여성 지식인들의 글에서부터 ‘부주의한 마초주의’를 교정한 시각으로 자연계를 바라본 현대 진화생물학자와 사회생물학자들의 연구 업적에 이르는, 다윈에게 등을 돌림과 동시에 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진실을 외면하게 된 페미니스트들과의 간극을 좁히고 화해를 시도한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역사 또한 들려준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수컷과 수줍고 수동적인 암컷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포함한, 여성[암컷]의 본성을 둘러싸고 양산된 수많은 편견과 신화들이 폐기된 자연계는 여성과 모성만이 아니라 배우자 관계와 부모 자식 관계에 이르기까지 인간 종 전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보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우선 지은이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자기희생적 모성’이 실제 자연 세계에서는 얼마나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는지를 보여 준다. ‘극단적인 보살핌’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서 사랑을 받은 동화 <샬럿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어미 거미 샬럿처럼 일생에 단 한 번 번식하고 죽는 단회 번식 종이나, 고도로 근친 번식적인 집단 또는 번식 이력을 끝낼 시점에 가까운 어미들에게서나 발견될 뿐 암컷이라는 성의 종 전형적 특성이 될 만큼 보편적으로 진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의 어머니들은 자기희생은커녕 유연하고 조작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다. 평생에 걸쳐 여러 차례 연속적으로 번식하는 다회 번식 종이 대부분인 포유류와 영장류에서는 특히 여성[암컷]이 한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넣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어머니들은 언제나 지금 앞에 놓인 번식의 기회와 미래에 보다 나은 조건에 찾아올 번식의 기회 사이에서, 또 한정된 자원을 각각의 자식에게 동등하게 분배할지 아니면 그중 일부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할지 등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일련의 타협들을 주도면밀하게 처리해 낸다.

 

또한 지은이는 제인 구달이 가장 총애한 어미 침팬지 ‘플로’를 통해 어머니들은 그저 맹목적인 양육자가 아니라 기업가적 제왕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다.

 

어머니들은 ‘질 대 양’에서 양을 선택한 수컷들의 번식 전략에 맞서 자신의 자식들에게로 아비 투자를 끌어들이고 영아 살해의 위협을 가하려는 또 다른 수컷들로부터 자식들을 지켜내고자 부성을 교란하고 분할한다. 자원과 배우자를 놓고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암컷들로부터 자신의 자식을 성공적으로 길러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위를 추구하는 성향이 다양한 부족 집단과 동물 사회의 어머니들에서 발견됐다. 즉 야망이 ‘좋은 어머니’ 되기와 양립할 수 없다는 낡은 사고방식에 종말을 고하고, 야망을 품는 여성[암컷]의 성향이 모성과 충돌하기는커녕 어머니로서의 성공에서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한다고, 모성과 야망은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한 마리 토끼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다양한 문화권의 인류 집단과 동물 사회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낸 현실의 어머니는 언제나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수행한다”며 “그 사이에서 타협하고,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투자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성을 교란하고 분할한다”고 말한다. 특히 양육에 도움을 줄 대행 어미를 곁에 두는 등 여러 정치적 목표를 손에 쥐고 곡예를 하는 다면적이고 능동적인 전략가라고 밝힌다.

 

이 책은 인류 역사와 진화사에서 편견의 장막에 가려 수동적인 여성 또는 자기희생적인 모성이라는 단일한 계층으로 무더기 취급을 받아 온 어머니들을 다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이로써 새롭고 혁명적인 모성 상(像)과 가족의 배치를 제시하고,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10대 임신, 낙태, 영아 살해, 입양 등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지침을 제공한다. [출처=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