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역사>는 인간이 만들고 경험하고 이룩한 모든 것의 총체인 ‘지식’의 기나긴 ‘역사’를 탐구하고 있다.


사진_지식의 역사ㅣ찰스 밴 도렌 지음ㅣ박중서 옮김ㅣ갈라파고스 펴냄.jpg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성인이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명 편집자로 알려진 지은이 찰스 밴 도렌은 ‘지식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 고대에서 현대까지 지식이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돼 왔는가 등 지식 형성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인류의 진보를 이끈 혁신적이고 위대한 발견들과 수많은 사상과 이론, 이를 가능케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다가올 내일에 인류의 지식은 과연 어떠한 형태로 진화할 것인가 하는 미래 지식의 구체적인 전망까지 제시한다.


지은이는 우선 기원전 3000년부터 이집트, 인도와 중국, 아스테카와 잉카에 이르는 여러 고대 제국의 지식을 살핀면서 지식의 기원과 초기 지식의 형태에 관해 말한다. 이어 기원전 6세기경의 ‘그리스 사상의 폭발’이라는 기념비적인 사건을 다룬다. 지은이는 이를 통해 오늘날 서양 문명의 사상적 토대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은이는 대제국 로마로 걸음을 옮겨 법과 체계, 철학 등 로마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리스 문명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중요한 지식들을 발굴해낸 거대 ‘국가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후 로마 제국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다소 음울했던 세월을 탐색하는데 여기선 로마가 몰락한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실험, 즉 ‘하느님의 나라’를 현실에 짓고자 한 중세인들의 모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17세기의 혁명에 반드시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갖다 붙여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갈릴레오 혁명’이라고 불러야만 마땅할 것이며, 또는 차라리 ‘갈릴레오-데카르트 혁명’이라고 불러야만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뉴턴의 이름을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그는 결코 자신이 사상에서 아주 대단한 변화를 야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자기보다 이전에 살았던 위대한 인물들의 연구를 전면으로 끌어냈을 뿐이며, 비록 그가 위대한 과학자 중에서도 가장 위대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다른 위대한 과학자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불행히도 “갈릴레오-데카르트 혁명”은 당장 발음하기에도 아주 편리하지는 않다. 발음의 문제는 결코 간과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고 하면 훨씬 더 그럴싸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사가들이 이 이름을 선호하고 줄곧 사용한 까닭도 아마 그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코페르니쿠스보다는 오히려 갈릴레오와 데카르트 쪽이 더욱 명예를 얻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중세 시대 이후 다시 ‘인간’ 중심으로 재편된 지식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지은이는 고전 문명이 부흥하고 그 가치가 재발견되는 과정과 음악, 미술, 문학 등 문예 전반에 걸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천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와 함께 콜럼버스를 위시한,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품고자 했던 여러 탐험가들의 이야기와 모험으로 가득했던 시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지식들을 조명한다.


지은이는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에서부터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 길버트,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의 과학적 발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인류의 진보에 비할 바 없이 큰 역할을 한 과학적 지식의 계보를 살핀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776년 미국독립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돌아보면서는 혁명의 원인과 과정, 이후 사회의 모습 등 혁명 전반에 관한 상세한 기술을 통해 위태했던 당시 시대의 모습과 변화와 전복을 열망한 많은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1914년에 이르러 유럽은 인류 역사에서 정점이 된 문명을 낳았다. 마치 희망의 등대처럼 빛났던 유럽의 문명은 지구 곳곳에서 모방되었으며, 세계의 상업과 금융과 지식과 문화 전반을 지배했다. 하지만 유럽인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교양 있고,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시적인 문명의 성취에 매우 불만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뭔가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정확했다. 곧이어 대전이 일어났고, 유럽과 전 세계가 빠져든 충돌은 몇 번인가 짧은 평화의 시기까지 포함해서 1세기의 3분의 1 가까이 이어지고 말았다. 불과 4년 사이에 유럽 문명은 용해되어 폐허가 되었고, 서양은 이제 새로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지은이가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1914년 20세기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다사다난했던 1세기다. 산업혁명에 의해 심화된 근대 자본 사회의 모순과 그 속에서 싹을 틔운 지식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어 이른바 ‘제1, 2차 세계대전’이라 부르는 ‘20세기 대전’에 관해 집중적으로 알아본다. 국지전 내지는 소규모의 국가전이 아닌 전 세계를 동시에 혼란에 빠뜨린 이 거대한 전쟁이 발발한 원인과 참상 등 세계대전의 객관적 실체를 파악한다.


매스미디어는 오늘날 미국의 젊은 성인 가운데 4분의 1이 실질적으로 문맹이라는 사실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비판자들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보다 그 비율이 더 높다면서, 대중 아동이 집에서 숙제를 하기보다는 TV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결국 이 모두가 TV의 탓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어렵고도 혼란스러운 문제의 진실을 알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백하다. 문자 사용 능력은 과거와 달리 세속적 성공으로 가는 확실한 열쇠까지는 아니며, 또한 문자 사용 능력을 [지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지니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는 점이다. 대중 개인은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기 발로 투표하러 간다. 즉 자신의 선호를 자기가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외에도 전체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 세계 질서를 재편해온 주요 이념을 비롯해 20세기 인간의 삶에 압도적인 변화를 가져온 과학 분야의 핵심적 지식들에 관해 논한다. 또 20세기 건축, 미술, 문학 등 예술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여러 예술가들의 업적에 대해 논의하고, 현대 사회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는 미디어의 폭발적인 힘에 관해 꼼꼼히 살펴보면서 다가올 내일에 인간의 지식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 그 전망을 여러 자료를 통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책은 ‘지식’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지식의 보고’이자 ‘지식의 계보’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