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초여름, 생수 제품에서 ‘브롬산염’이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브롬산염은 유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발암 가능물질이다. 생수를 ‘오존’이라는 물질로 소독처리 할 때 인공적으로 생기는 물질인데, 생수에서 발암 가능물질이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이 생수를 통해 발암 가능물질을 먹을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아이들에게 그 생수 제품의 이름을 꼭 알려 마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지만, 생수 회사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소비자는 끝내 제품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사진_맛있는 식품법 혁명ㅣ송기호 지음ㅣ김영사 펴냄.jpg 백화점과 마트의 식품매장에는 늘 먹을거리가 소비자들을 기다리고, 소비자들은 자신과 그의 자녀들이 먹을 최상의 식품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 쪽에서 바라본 일면일 뿐이다. 단지 소비자는 지갑에서 현금이나 카드를 꺼내 계산할 자유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선택한 식품에 어떤 식품첨가물이 들어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식품체계가 승인하고 공급하는 것만을 먹을 수 있다. 식품체계가 표기하기로 선택한 식품 정보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식품체계는 땅과 바다에서 식품이 생산돼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흐름과 관계를 결정하고, 공급한다. 이를 움직이는 것이 식품법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과 가족은 식품법이 허용하는 것을 먹게 된다. 가족이 먹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식품법’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차려진 밥상의 풍요에 도취해도 좋은가? 2008년 현재 전국의 농가 수는 121만 가구다. 그런데 65세가 넘은 농민의 수가 106만 명이다. 지금 정의로운 식품체계의 틀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연 조건을 이용하는 지혜를 가진 소농들은 그 지혜를 물려줄 후계자를 만나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소농을 문 밖으로 내쫓는 식품체계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밥을 먹을 권리는 없다.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식판을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세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그럼에도 법이 완전히 규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법이 그것을 허용한 이상 식판을 아무리 잘 헹군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맛있는 식품법혁명>은 이 학교급식 식기세척제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 사건을 목격한 지은이 송기호는 지난 5년간 모두 124차례의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정부 문서를 근거로, 식품법 100년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먹을거리를 둘러싼 국가와 법의 관계를 분석하고 추적해 칼날을 들이댄다. 식민지 시기 식품법부터 현재까지 100년의 역사적 뿌리와 한계, 허점을 꼼꼼하게 짚으며, 기존의 제도권 학자와 전문가들이 손대지 못했던 식품법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실상과 해법을 노련하고 긴박한 필치로 그려낸다. 농장에서 식탁으로,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어지는 식품체계를 통제하는 식품법이 지금까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이제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식품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책을 통해 따져 묻고 이에 대한 해결점을 찾는다.


고립된 한 사람의 소비자는 자기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실현할 수 없다. 발암 가능물질을 급식 식기세척제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발암 가능물질 위험 생수 제품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한 사람의 소비자는 더없이 약하고 무능한 존재다. 소비자 선택 또는 소비자 주권이라고 말하지만, 거대한 식품체계 속에 던져진 소비자 개개인은 참말로 무기력하다. 식품체계는 그가 가진 식품 정보 자체를 통제한다. 혼자로는 거대한 벽을 넘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식품체계를 바로 세울 힘은 한 사람 한 사람 소비자에게서 나온다.



지은이는 우리 건강과 먹을거리를 위협하며 치열하고 은밀하게 벌어진 밥상 전쟁의 실체를 드러낸다. 풍요의 밥상 뒤에는 식품회사와 거대자본이 통제해온 위선의 밥상이 있어 왔다.


권력과 탐욕으로 흔들리는 ‘푸드 시스템’에 대한 지은이의 고발과 추적은 그간 의심했지만, 앞으로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바꿀 것인가?’를 소비자에게 정중히 묻고 있다. 


이 책은 개고기 문제에 대해 찬반론을 펴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기서 개고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까닭은, 조선총독부와 일부 영양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전통적 식생활을 함부로 개조의 대상으로 삼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개고기는 5장에서 살필 유전자조작 식품과는 다르다. 오랜 식생활을 통한 안전성 검증 없이 식품체계에 새로이 진입하려는 그런 유형의 먹을거리가 아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이미 오랫동안 먹어온 것이다.



안전한 식품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필요하다. 좋은 밥을 먹을 권리는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며 인권인 것이다. 좋은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터 잡은 식품체계가 필요하다. 책은 이런 ‘상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상식을 배반하는 식품법을 설명하면서,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이야기한다. 조선총독부 식품법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100년에 걸쳐 뿌리를 내린 식품법. 1911년 ‘조선인 비위생론’으로 시작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핵심 논리가 오늘날까지 우리 식품법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책은 이와 함께 우리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 소농과 거대기업, 풍요와 빈곤을 넘나들며 상식을 배반하는 법의 실상을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