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빚쟁이처럼 아이들에게 과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과제를 해내야 할 빚진 자가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당연히 집에서 쉴 권리가 있다. 통제가 필요하고, 숙제가 필요하고,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른들의 발상이지 아이들에겐 그렇지 않다.”

 

 핀란드 아이들도 옥죄다는 피사(PISA) 테스트, 덴마크 아이들은 비껴 갈 수 있을까?

 

피사 테스트에서 덴마크는 중위권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학습에 들이는 시간이 핀란드보다 훨씬 적으며, 학습에 대한 선호도는 핀란드 학생들보다 더 높다. 2위를 기록한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아예 비교도 되지 않는다. 좋아서 하는 공부와 마지못해 하는 공부의 차이는 크다. 그 결과는 고등학교 이후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우리 교육계의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덴마크의 느긋함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비록 덴마크도 신자유주의 광풍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해도 우리처럼 이렇게 휘둘리지는 않는다. 하늘로 뻗은 가지를 보면서 뿌리 깊은 나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거대한 뿌리를 상상하게 된다.

 

덴마크 교육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안데르센과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이 나라는 사실 교육사적으로도 매우 주목할 만한 나라다. 이미 150년 전에 자유학교운동이 일어났고, 의무취학이 아닌 의무교육이 가장 먼저 제도화된 나라이기도 하다. 민중교육의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뿌리 깊은 이 나라에서 지난 150년 동안 제도교육과 나란히 대안적 교육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은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독특하다.

 

덴마크 사회를 관통하는 정신은 무엇보다 ‘소수자의 권리 존중’. 미국이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다수의 민주주의’로, 소수자들은 다음에 자신들이 다수가 되기만을 바라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덴마크의 민주주의는 이와 다른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덴마크는 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이 제정된 1849년 이후 소수자의 민주주의 정신을 헌법에 우선으로 반영했다. 특히 그룬트비를 비롯한 근대 덴마크의 정신적 지도자들은 이 헌법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들은 소수자가 다수자와 달리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자(국가)로 하여금 소수자의 견해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수자 민주주의 전통이 덴마크의 독특한 교육 환경의 토대가 되고 있다.

 

사실상 서유럽에서도 이런 방향에서 진보를 이룩한 나라는 드문 편이다. 덴마크에서 소수자는 스스로 원하는 학교를 세우고 국가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1년차에 학생 14명만 모집할 수 있으면 어떤 학교든 국가에서 지원한다. 2년차에는 24명, 3년차는 32명의 학생이 있으면 지원이 계속된다. 현재 9만7000여 명의 학생들이 500여 개의 자유학교에 재학 중인데, 이 비율은 전체 학생의 13.4%에 이른다. 적어도 10%의 구성원들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숨통을 틔워 놓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인 셈이다.

 

물론 덴마크 사회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광풍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덴마크 사회에도 보수화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비핵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츠빈스쿨이 정부지원금 유용 혐의로 인가가 취소되면서 경영난을 겪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틈새학교로서 여유롭게 자기 삶의 전망을 찾을 수 있게 해주던 시민대학과 에프터스콜레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것도 신자유주의 경쟁 바람이 몰고 온 여파로 볼 수 있다. ‘틈새’가 사라지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 치열한 사회로 변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덴마크 교육체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 틈새학교들의 존재다. 자유학교운동을 통해 시민들이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로도 볼 수 있다.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 사이, 고등학교 과정에서 대학 진학 전 일 년 정도씩 기존 학제에서 벗어나 자기를 성찰하고 삶의 전망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던 에프터스콜레와 폴케회어스콜레는 성장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주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성찰’과 ‘전망’은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돌아보고 내다보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덴마크 자유교육에서 무엇보다 눈여겨 볼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덴마크 자유교육>은 덴마크의 교육제도 전반과 자유교육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이론으로, 덴마크 자유교육에 관한 편저자의 글과 덴마크자유학교협회에서 발간한 소책자와 칼 크리스티안 에기디우스(Karl Kristian Ægidius)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이어 다양한 현장을 둘러 본 탐방기와 보고서들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