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담 주최, GDP 증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도달, OECD 가입….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 이러한 성공적인 지표 이면에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려주는 통계가 도사리고 있다.


사진_불안증폭사회ㅣ김태형 지음ㅣ위즈덤하우스 펴냄.jpg 행복지수는 세계 50위권에 불과하고 OECD 국가 중 남녀 소득 격차, 국채 증가율, 세부담 증가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근로 시간, 노동유연성(해고의 용이성), 산재 사망자, 비정규직 비율, 이혼율, 자살률, 사교육비 비중 등이 1위인 대한민국. 우리는 여전히 생존을 위협당하며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김태형은 <불안증폭사회>에서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한마디로 ‘불안’, 즉 생존위협에 대한 만성화된 공포라고 규정한다. 아울러 자살률이 높아지는데 출산율은 줄어드는 한국사회가 ‘이미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고 단언한다. IMF경제위기 이후 사회 시스템의 변화와 환경에 대해 다각도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인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간에 괴롭히더라도 어지간히 괴롭히다 말아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그 괴롭힘의 정도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것 같다. 느닷없이 이런 비관적인 얘기를 꺼내는 까닭은 한국인들이 생명체라면 거부해서는 안 되는 본능적 요구조차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한국의 출산율은 OECD 국가들 중 당당한 꼴찌이다. OECD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8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2004년 이후 5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2009년의 합계출산율은 1.15명(여성 한 명이 평생에 걸쳐 낳는 자녀수가 평균 1.15명이라는 의미)으로 더 낮아졌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혼인건수도 2008년부터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임여성의 수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한국인의 병든 마음의 일차적 책임은 한국사회에 있다고 주장한다. 마음의 병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은 아무리 양보해도 70퍼센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자살과 범죄와 같은 사회 이상 징후에 대해 당사자의 이상 심리와 일탈로 해석하고 개인 책임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70퍼센트에 대해서는 침묵해왔다. 왜, 도대체 왜 그럴까?


책은 IMF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한국인의 마음을 어떻게 망가뜨려왔고 병들게 했는지, 또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불안의 실체는 무엇이고 한국인들이 왜 유독 불안 요소에 취약한지를 분석한다. 또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한국인의 9가지 심리 코드로 분석해내는 한편, 우리 민족의 심리적 강점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동체 만들기를 제안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오늘의 한국사회를 한국인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9가지 심리 코드는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 등으로 요약된다. 치솟는 자살률, 성범죄율, 사이비종교의 확대와 각종 중독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사건, 사고, 병적 징후는 이 9가지 심리 코드로 나타나며 이러한 사건들은 다시 한국인에게 부정적 감정을 야기하여 우리 사회에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히 이 가운데 무력감과 의존심, 자기혐오는 생존을 위협당하는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한국인 스스로 일어날 의지마저 박탈하고 있다. 지은이는 ‘나 혼자 이 미친 세상을 어떻게 바꿔?’라는 무력감을 비롯해 독재자에 대한 향수,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미국에 의존하는 주류세력의 사대주의, 나라 경제를 재벌에게 맡기고 국민은 떡고물이 언제 떨어질까 기다리게 하는 트리클다운 정책, 분에 넘치는 명품 모방소비, 하급계층이 부유층을 대변하는 부자정당을 지지하는 계급배반 투표 등 한국사회 특유의 심리 코드 설명한다.


트리클다운 이론의 기저에는 ‘국민들은 떡고물이나 받아먹어라’, ‘국민들은 자기 주제를 파악하고 그저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식의 국민 대중에 대한 경멸과 무시가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 트리클다운 정책의 희생자가 되어야만 했던 한국인들은 경멸과 무시에 익숙해진 피해자 특유의 심리를 가지게 되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재벌(대기업) 없이 어떻게 경제를 살려?’와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오늘의 현실은, 이미 그들이 경제건설에서 국민 대중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비굴함과 무력감에 깊이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한국인들이 생존을 위협당하는 현재의 암울한 처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힘센 대상에게 의존함으로써 자기 문제에서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은이는 책에서 특히 돈과 물질만으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신자유주의가 심어놓은 허상이라고 꼬집는다. 사람은 특히 한국인은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적 생명을 중시한다. 과거 일제 시대 애국자들이 죽음을 두려워 않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적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 까닭이다. 사회에서 소외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삐뚤어진 명품 열풍과 사교육비의 증가 등 많은 한국사회의 문제들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준에 자신을 무리하게 맞추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사회를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지은이는 한편으로 ‘폭주하는 한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남는 법’을 제시한다. 이는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점검하고 바꿔나가야 할 대안이다.


지은이가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안은 ‘공동체 재건’이다. 개인이 당장의 생존을 걱정하기보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고민하고, 힘을 모아 건강한 공동체를 조직함으로써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악영향을 함께 이겨낼 때 우리 사회는 차츰 역주행을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