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마하트마 간디.


사진_핫 트렌드 2011ㅣ한국트렌드연구소 PFIN 지음ㅣ리더스북 펴냄.jpg 생태학 용어 중에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라는 것이 있다. 이는 상호연관성이 있는 두 종이 서로 생존이나 번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치타와 영양 같은 생존경쟁 관계나 꿀벌과 꽃 같은 공존공생 관계에서 공진화를 볼 수 있다. 특히 같은 종 내에서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생존경쟁이 아니라 종과 종 사이의 관계를 통해 진화를 설명하는 용어인 공진화는 각각의 종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선해나가는 가운데 서로 적응하고 협력하면서 순환적인 진화가 이뤄진다는 개념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1기가 디지털이 인간의 삶에 도입되는 단계였다면, 도래하고 있는 디지털 2기는 디지털이 인간의 삶 깊숙이 침투하는 성숙단계다. 디지털은 일과 놀이, 관계와 감각의 매 순간을 인간과 함께하며 맹렬히 진화하는 중이다. 인간에게도 그에 걸맞은 진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디지털과 손잡고 영리한 ‘공진화’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트렌드 전문가 집단인 한국트렌드연구소와 PFIN는 <핫트렌드 2011>에서 디지털 2기를 맞는 트렌드 키워드로 ‘공진화’를 제안한다.


2011년, 새롭게 시도되는 착한 일들은 무거운 문명비판이나 심각한 경고, 돈이 많이 드는 인프라의 구축을 향하기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개선을 모색하는 길로 접어들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인간적 의무를 이행하기에 더 쉬운 접근법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또 많은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흥미로운 해결책이고, 좀 더 인간을 이해하는 가운데 나오는 사회적 개선안들이다.



지난 20년간 디지털 1기를 대표하는 상품이 PC와 휴대전화, 초고속인터넷이었다면 2009년부터 본격화된 디지털 2기를 견인하는 상품은 바로 스마트폰, SNS, 모바일 인터넷이다. 속도가 관건이던 디지털 1기는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한국인에게 축복이었지만, 공유와 개방을 속성으로 하는 디지털 2기는 끼리끼리 문화와 수직적 네트워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가혹한 체질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책은 이제 시장점유율이 아닌 ‘시간점유율’을 높일 때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2기를 따라잡지 못한 이유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적응할 변화의 방향을 포착하는 데 뒤쳐진 것이다. SNS의 최강자 페이스북의 가입자 수를 보자. 디지털 1기의 열등생들이 저가 스마트폰의 보급에 힘입어 소셜네트워크의 강국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한참 뒤처져 있다. 과거 속도경쟁에서 앞서왔던 우리지만 디지털 2기를 견인하는 모바일 라이프와 스마트폰의 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결과 디지털 혁명의 중심부가 옮겨가는 변화를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스마트워크의 성패는 기술보다 기술이 강요한 문화적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스마트워크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상사는 눈앞에 없는 직원을 믿어야 하고, 직원은 눈앞에 없는 상사가 공정하게 업무능력을 평가해줄 것을 믿어야 하며, 직원들에게 일하는 방식의 자율적 선택권을 주는 개방성이 있어야 하고, 결과 중심의 명확한 평가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상당 부분 문화와 가치관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문화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부터 바꿔나가야 하는데, 만일 기술이나 인프라의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많은 추가비용을 물고서야 올바른 진화의 길을 찾게 될 것 같다.


국내 트위터 이용자 수는 100만 명을 돌파했고, 페이스북 이용자는 173만 명을 기록했다. 블로그나 싸이월드가 자기만의 방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친구를 맺는 제한적인 네트워크였다면, 페이스북은 그 방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공유하는 개방적인 네트워크다. 다양한 관계맺기에 익숙하지 않고 자기만의 밀실을 추구하는 성향이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는 가혹한 변화나 다름이 없다. SNS와 잘 어울리지 않는 심리적 원형, 혹은 문화적 코드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얼마나 변해갈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세계적으로 소셜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점점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적응해가야 할까?

생활 속의 작은 틈을 이용한 활동이 다양한 놀이로 연결되고 있으며, 단순한 접근법을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는 것. 특히 그 옛날 별다른 놀이기구가 없던 시절, 아이들이 주변의 사물을 가지고 온몸으로 놀던 것처럼 신체적 동작이 요구되는 놀이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 오프라인에서는 이 익숙한 동작이 도시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신선하게 펼쳐지고, 온라인에서는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악기를 부는 것 같은 일상적 동작이 게임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 두뇌를 혹사시키지 않고 오로지 재미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책은 디지털 2기가 요구하는 진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영리하게 수용한다면 공진화에 성공하겠지만, 디지털 1기의 연장선상에서 속도에 연연하며 빠르게 적응하려고만 든다면 도태하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2011년은 그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벌려놓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1년은 불과 1, 2년의 차이를 두고 장기 리그의 초반전이 벌어지는 출발점이다. 누구에게나 공진화의 기회는 아직 열려 있는 셈이다. 책은 주요 영역에서 찾은 키워드를 통해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