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말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떡 줄 사람(소비자)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생산자 중심의 상품을 만들고선 시장 반응이 왜 싸늘한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사진_2011 대한민국 소비지도ㅣ김난도 최인수 윤덕환 지음ㅣ한국경제신문 펴냄.jpg 물론 상품 종류가 다양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생산자 중심의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도 잘 팔릴 수 있었다. ‘대체제’가 될 수 있는 제품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종류의 상품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가 나오고 있는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니즈(needs)와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직관에만 의존해 만든 상품이 잘 팔리리라 기대하는 것은 ‘김칫국’부터 마시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실례를 통해 살펴보자.


휴대용 디지털 기기의 성능이 놀랍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하나의 기기 속에 여러 기능을 탑재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한 대의 기기로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됐으니 소비자들이 열광할 만도 했다. 일례로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는 MP3와 동영상 재생이 모두 가능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컨버전스(convergence, 복합 기능)의 대표적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MP3 플레이어 시장이 PMP로 흡수될 것이라는 전망이 큰 설득력을 얻었다.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01.jpg 그런데 이와 관련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시행한 리서치 조사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MP3는 MP3대로, PMP는 PMP대로 각각 사용 목적이 뚜렷했다. MP3는 ‘음악감상’ 외에는 딱히 뚜렷한 사용 용도가 없는 반면, PMP는 소비자의 절반 정도(46.4%)가 ‘학습’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제품 구매 이유도 각기 달랐다. MP3 플레이어의 경우 주 구매 요인은 ‘디자인(51.5%)’이었다. PMP는 ‘저장 공간(52.3%)’을 중요시했다. 재구입 의향에서도 MP3(52.4%), PMP(36.1%)로 차이가 났다. 이외 추가적으로 시행한 리서치 결과를 종합해보면 소비자들은 MP3를 ‘디지털 액세서리’, PMP를 ‘이동성·휴대성이 우수한 동영상 학습기’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PMP가 MP3 플레이어 시장을 대체한다는 전망은 실제 소비자들의 니즈는 배제한 채 기능상의 중복만을 보고 예측한 대표적 김칫국 마시기라 볼 수 있다.


<2011 대한민국 소비지도-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경기침체와 불황은 소비자의 심리에 따라 결정되므로 소비 트렌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 경제연구소 등이 매년마다 한두 차례 발표하는 소비 트렌드는 대개 ‘메가 트렌드(Mega Trend)’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인과 기업은 메가 트렌드와 자신의 업(業)을 잘 연결시키지 못한다. 때문에 메가 트렌드보다는 ‘마이크로 트렌드(Micro Trend)’가 보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 마이크로 트렌드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소비자 리서치'라고 할 수 있다. 제품을 직접 선택하는 소비자의 입을 통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비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주고, 가까운 미래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제공한다.


하지만 마이크로 트렌드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소규모 점포에서부터 글로벌 기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영자들이 소비자의 니즈를 읽어내는 일이 무척 어렵다고 토로한다. 특히 중소기업을 운영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상당수는 “자금도 없고 방법도 잘 모르기에 소비자를 조사할 엄두를 못 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소비자 조사는 시장을 이해하는 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식의 부족과 비용 부담과 역량 제한 등의 이유로 소비자와 시장을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못하고 직관에 의존해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소비자 조사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모든 데이터는 소비자 조사 컨텐츠 기업 트렌드모니터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17개 분야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200회의 소비자 리서치 결과다. 데이터 신뢰도 확보를 위해 전문 리서치 그룹 엠브레인의 58만 패널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무엇보다 소비자 패널을 활용한 리서치 조사와 분석은 단순한 가늠치가 아닌 ‘사실(fact)’이라는 것. 다양한 소통 수단을 통해 소비자들 서로가 시장에 대한 평가를 주고받으면서 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대, 이러한 혁명적 변화의 시대에 소비자 조사에 근거한 사실들은 경영과 마케팅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