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양극화, 부의 불균등한 분배 문제가 최근 현대 사회의 핵심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추상적으로는 노동자와 서민의 소비력 약화와 교육 기회 박탈로 인한 한 사회나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사회 문제와 사건 사고의 원인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부의 불균등 문제는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다. 그 어떤 성군도, 그 어떤 철인도,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지난 세기의 사회주의 실험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실패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사진_사회적 원자 ㅣ마크 뷰캐넌 지음ㅣ김희봉 옮김ㅣ사이언스북스 펴냄.jpg 왜 부의 불균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걸까? 왜 불평등이 생기는 걸까? 우파 경제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능력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좌파 운동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소수의 권력자들이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이를 배제하기 때문일까?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혼돈 이론을 이용해 사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다른 답을 내놓는다. 부의 불균등한 분배, 즉 부의 불평등은 언어 능력이나 문화처럼 보편적인 인간 특성이며,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 문제를 물리학과 수학의 법칙으로 기술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사를 수천 년 동안 지배해 온 이 문제를 경제학 같은 기존의 사회 과학이나 공상적인 유토피아 이론이 아니라 물리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집단 속에서, 사회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적응, 모방, 협력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방식과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론 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는 부의 불평등 문제에서부터 집단행동의 수수께끼, 그리고 역사 변동까지 인간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사회 물리학(social physics)을 소개하고 있다. 비평형계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복잡계 물리학에서 진화 심리학은 물론, 신경 과학과 행동 경제학을 통합하려고 하는 신경 경제학까지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 여러 분야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통섭적 연구를 보여준다.


집합적인 조직과 그 변화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은 명확하게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도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 오염에서 핵무기의 재확산까지, 인류가 직면한 전대미문의 심각한 문제들은 모두 집단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나는 물리학의 어떤 위대한 발견으로 이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미래를 안전하게 헤쳐나갈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닥치는 대로 해?가는' 방식일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그러나 집단을 움직이는 숨은 힘을 적절하게 이해한다면, 닥치는 대로 해나가는 우리의 기술도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복잡계 물리학을 연구하는 이론 물리학자이자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지은이는 이 책에서 사회를 하나의 물체로, 그리고 인간을 그 사회라는 물체를 이루는 원자로 이해하면 인간 세상 배후에 숨어 있는 패턴이나 정밀한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과 인간의 집단행동 역시 자연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인종주의, 민족 학살, 주식 시장의 주가 변동, 헛소문과 이의 확산, 부의 불평등 같은 온갖 사회 과학적 사례들을 사회에 대한 물리학적 이해, 즉 ‘사회 물리학’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부의 불평등이 정밀한 수학 법칙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할 수 있는 일종의 ‘자연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사회적 원자 가설이 어떻게 사회 현상에 강력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프랑스 물리학자 장필리프 부쇼와 마르크 메자르드의 이론을 통해 보여 준다. 부쇼와 메자르드는 부가 10배 늘어날 때마다 그 부를 소유한 사람의 수가 6분의 1로 떨어진다는 파레토의 법칙(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 발견한 법칙으로 수학적 표현은 ‘부 W를 소유한 사람의 수는 Wⁿ에 반비례하며 n은 2.5 정도 된다’이다)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만든 인공 세계를 만들고, 그 인공 세계 속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투자 능력을 줬다. 그리고 부의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조건을 더해 줬다. 아주 순간적인 우연으로 부를 조금 더 얻은 개인이 등장하자마자 사회 전체의 부가 순식간에 소수의 집적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부의 규모에 따른 부자의 수는 정확하게 복잡계 이론과 네트워크 과학에 적용되는 멱함수 법칙을 따랐다. 이는 부의 불평등이 개인의 능력차나 권력자의 음모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연과 반복의 물리학적 과정에서 생기는 것임을 정확하게 보여 줌으로써 수천 년에 걸친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 버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지은이는 사회적 원자의 본질을 두 가지로 정의한다. 우선 사람은 이성적인 계산기도 아니고 교활한 도박사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람은 적응적인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물질 세계의 원자가 질량과 전하라는 본질적인 특징을 가지고, 물리학자들은 이 특질을 가지고 원자의 운동과 반응을 설명하는 것과 같이 지은이는 이 두 가지 본질을 통해 이해하기 힘든 ‘종잡을 수 없는 두발 동물, 인간’의 행동들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회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에 있다고 할 만하다. 인간 세계에 적용되는 엄밀한 '법칙'을 찾기에는 아직 멀었는지 모르지만, 과학자들은 인간 세상에서도 법칙에 가까운 규칙성들을 발견했다. 지금은 이러한 규칙성이 개인의 자유 의지와 아무런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졌다. 우리는 자유로운 개인이고 각자 자기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데도 그 행동의 총합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학의 상황과 비슷해서, 엉망으로 얽혀 돌아가는 원자들에서 정교한 열역학이 나오고, 더 나아가 시계처럼 정밀한 행성의 운행까지 나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두 가지 견해와 대립한다. 하나는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은 너무나도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과학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을 과학으로 해부하려는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적 선택 가설에 근거해 인간을 자신의 이해에 따라 행동하고 선택하는 이성적인 존재로서 설명할 수 있는 고전 경제학과 기존 사회 과학의 견해다.


지은이는 보스니아 내전의 학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이슬람 포로 학대 같은 인간의 내재적 야수성을 보여 주는 사건들에서 인기 있는 술집을 붐비지 않을 때 찾으려고 술집 손님의 수 분포를 연구하다가 주식 투자자들의 행동 원리를 수학적으로 찾아낸 한 복잡계 과학자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들의 집단 행동과 그 집단 행동이 직조하는 사회 이면에는 우리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설명해야 하는 어떤 패턴과 법칙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지은이는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완벽하게 기술하는 물리 방정식으로 만들 수 없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신성시하는 낭만주의적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나 인간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정한 합리주의자로 기술하는 그릇된 경제학에 인간을 설명하는 ‘인간 과학’을 맡겨 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지은이는 나아가 자연을 설명하는 데 성과를 내온 자연 과학의 방법과 기술을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도 적용해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족 갈등을 중재하고, 인간의 집단 광기가 권력과 결탁해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