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의 사유’와 ‘생태학적 상상력’을 지닌 건축가로 평가받는 이일훈은 그동안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를 자신의 건축미학과 생활철학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식물성의 사유를 환경과 생태의 장으로까지 확장해 웅숭깊은 ‘녹색철학’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에 따르는 일상의 실천적 덕목을 제안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진_나는 다르게 생각한다ㅣ이일훈 지음ㅣ사문난적 펴냄.jpg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이일훈이 그동안 숲 가꾸기 활동단체 ‘생명의 숲’을 응원하는 월간지 <숲>에 연재한 글을 묶은 생태 환경 에세이집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환경’이란 우리 삶을 에워싼 모든 조건들을 이르기에 삶의 질은 곧 환경의 질을 의미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즉 환경과 생태의 문제는 바로 사람과 삶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이 ‘다툼’에서 ‘다름’으로의 소통을 희원하는 ‘녹색철학’적 사상과 ‘건축미학’적 사유의 편린들이 곳곳에 녹아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언제나 새롭고도 ‘다른’ 질문을 던지는 건축가로, 생태학적 삶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글쟁이’로서의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생업으로 삼고 있는 건축과 디자인, 도시설계의 관련 부문만이 아니라, 이 모든 자본주의적 일상을 감싸고 있는 자연과 생태 환경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러한 집중은 건축의 문제를 오롯이 삶의 문제로까지 확장한 결과다. 지은이의 모든 생태학적 관심이 집중된 핵심적인 상징어가 ‘숲’과 ‘풍경’이라는 사실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여기서 이 ‘숲’은 산, 하천, 습지, 뻘, 호수, 농지 등 모든 환경적 요소들을 아우르는 제유이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숲의 둘레’, ‘풍경의 둘레’, ‘건축의 둘레’다.

 

‘숲의 둘레’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숲은 행복을 주지만 불편이 따르는 천국이며,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이 자칫 많은 오류를 낳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풍경의 둘레’는 “노랗게 물든 거리의 은행잎을 좋아하면 똥냄새 나는 도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근래에 자주 회자되는 ‘녹색성장’보다는 ‘녹색철학’이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환경의 품격을 말하는 것보다 생각의 품격이 먼저”라는 지은의 관점은 바로 우리가 생태와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 알려준다.

 

‘건축의 둘레’는 “권할 만한 불편을 실천하며 작은 규모의 검소한 건축으로 지구환경의 부담을 줄이려는 사고방식”을 제안하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방안으로서 지은이 자신의 건축설계방법론인 ‘채나눔’이 이미 제시한 바 있는 ‘불편하게, 밖에, 늘려 살기’를 주장한다. 이는 ‘편하게만, 안에서만, 좁혀서만’ 살려고 하는 자본주의적 사유의 체계를 벗어나 ‘다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향한 말이다.

 

지은이는 책에서 통일 이후의 비무장지대 개발을 둘러싼 문제를 놓고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총을 들고 있었던 이유는, 동족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숲’은 자연과 인간과 현실의 삶을 아우르는 ‘생명 그 자체’의 상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