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감식으로 친자 확인 검사가 가능해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새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조류 세계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 가운데 하나는 많은 새들이 상당히 높은 비율로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짝짓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들은 놀랍도록 복잡한 성 전략을 진화시켜온 것이다.

 

이미지_ 암컷은 언제나 옳다, 브리짓 스터치버리, 정해영, 이순.jpg *암컷은 언제나 옳다, 브리짓 스터치버리/정해영, 이순.

 

어째서 암컷들은 이웃 수컷과 불륜을 저지르고, 수컷은 배우자의 공공연한 혼외정사를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20년 이상 남·북아케리카의 새들을 연구해온 브릿지 스터치버리는 <암컷은 언제나 옳다>에서 짝짓기와 번식에 관한 한 암컷이 선택권을 갖고 수컷들은 무한경쟁으로 몰고 간다는 성 선책 이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수컷은 암컷의 처분에 달려 있으며, 선택의 주도권을 쥔 암컷은 필요에 따라 배우자를 속이고 불륜을 저지르고 자식을 버린다. 그렇다면 암컷의 배우자 선택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 책은 새들의 번식 행동 외에도 둥지 찾기, 동기 간 경쟁, 공동양육, 군집 생활의 전모, 그리고 생사를 건 철새의 이동 등 야생동물이 자연에서 살아가고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선택하는 다양한 생존전략과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것 같지만, 새들은 음식과 둥지, 짝과 같은 자원을 두고 늘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아름답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한 새들에게 싸움과 공격성은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은 형제 사이에서도 예외가 없다.

 

왜가리의 경우, 한 자식이 다른 자식을 죽이는 형제살해가 흔하다. 어미는 두 마리의 새끼를 키우기 힘들지만 일상적으로 두 개의 알을 낳고, 첫째는 충분히 자라면 동생을 쪼아 먹는다. 부모는 남은 새끼의 생존 전망을 높이고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해 이를 방관한다.

 

둥지를 짓는 행운도 아무에게나 돌아가지 않는다. ‘떠돌이새’는 가정이라는 뿌리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새들을 일컫는데, 이들이 집을 소유하기 위한 전술은 꽤나 정교하다. 


가령, 보라큰털발제비는 여분의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나이 든 새를 괴롭혀서 남는 자원을 포기하게 만들고, 검은머리쇠박새의 떠돌이새들은 이 무리 저 무리 배회하다가 최고 서열의 새가 없어지면 재빨리 둥지를 낚아챈다. 


빈 둥지가 거의 없는 인도양의 커즌 섬에 서식하는 세이셸솔새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부모가 죽으면 둥지를 물려받는다.

 

새들의 삶은 짝을 선택하고 이혼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것을 비롯한 대부분의 측면에서 이기적인 행동에 기반한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번식을 포기하고 친족들의 새끼를 돌보는 ‘양육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많은 종들에서 부모 새들은 한 마리 또는 십여 마리에 이르는 성조(成鳥)들의 도움을 받는데, 이 새들은 일시적인 입주 유모 혹은 조력자로서 양육의 부담을 공유한다. 


번식 능력이 있는 새가 어째서 조력자가 되는 걸까. 


양육 조력자들은 대부분 새끼 새들의 유전적 부모이거나 형제자매, 조카인 경우가 많다. 양육 조력은, 스스로 번식이 어려운 새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혈통을 보존하려는 측면에서 한 행동, 결국 이기적인 선택인 셈이다.

 

모든 암컷의 은밀한 진실

 

왜 수컷들은 암컷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걸까. 


무엇보다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깃털로 치장하는 요정굴뚝새 수컷과 봄날 아침마다 열렬한 춤 공연을 펼치는 큰초원뇌조 수컷, 그리고 복잡한 레퍼토리로 새벽 합창을 하는 호주동박새 수컷은 짝짓기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른 수컷들과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인다. 


문제는 암컷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춤 공연을 펼치는 큰초원뇌조는 눈싸움 경합과 차고 쪼는 몸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결국 구애 공연의 중앙무대를 차지하지 못하면 암컷에게 퇴짜를 맞는다.

 

그렇다면 암컷은 어떤 스타일의 수컷을 좋아할까. 


보라큰털발제비 암컷은 나이가 많은 수컷을 선호하고, 유럽 푸른박새 암컷은 다양한 노랫소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하고, 멕시코양진이 암컷은 선명한 빨간색 깃털을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암컷이 이렇게 까다로운 이유는 뭘까. 암컷이 낳는 알들은 단백질과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암컷은 유전적 기여자로서, 그리고 가정을 꾸리기 위한 자원 제공자로서 수컷의 가치를 판단한다.

 

조류 암컷은 일반적으로 알을 수정할 정자가 필요할 때만 수컷의 접근을 성적으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번식기가 겹치는 데서 일어난다. 참새목과 명금류의 새들은 전체 종의 86%가 빈번하게 외도를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이런 불명예를 안은 이유는 번식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반면 열대새에 속하는 회색개미새 부부는 1년 내내 함께 노래하고, 함께 식량을 구하고, 함께 알을 품고, 함께 새끼를 먹이고, 함께 침입자와 싸운다. 


열대새들의 경우, 번식기가 길고 암컷들의 생식 시기가 동일하지 않은 점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다. 


회색개미새 중 동시에 생식능력이 생기는 암컷은 10% 미만이기 때문에 수컷이 아무리 구애를 한다고 해도 암컷이 알을 낳을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냉대받기 쉽다. 다시 말해 바람피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조류 세계에서 이혼은 일상적인 일이다. 떠돌이알바트로스(이혼율 0%)처럼 극도의 육아부담 때문에 평생 협력하고 서로에게 헌신하는 새도 있지만, 암컷이 알을 낳기 시작하면 관계를 청산하고 심지어 1년에 여섯 차례나 결혼해 새로이 둥지를 트는 유럽오목눈이(이혼율 100%)도 있다. 


이혼에 관한 한 새들은 아주 실용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한다. 


이혼은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목적으로, 또는 한 파트너와 살 때 생산 가능한 자손보다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려는 목적 때문에 일어난다. 때문에 배우자와 새끼를 밥 먹듯이 버리는 유럽오목눈이가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왜 어떤 종은 평생을 함께하고, 어떤 종은 배우자와 새끼를 가차 없이 버릴까. 책에 따르면 일부일처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실함보다는 기회 부족의 결과일지 모른다. 


겉으로 영구적인 부부 결합 패턴을 보인 회색개미새도 옆집에서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 없이 제 짝과 이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랫동안 ‘영역’을 차지하고 ‘긴 수명’을 누릴 수 있는 이익이 배우자에 대한 ‘충실함’으로 나타난 것뿐인 것이다.

 

책은 이외에도 인간은 새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선택압을 바꿔놓고, 주어진 행동의 득과 실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진화를 재설계하는 셈으로. 이에 대해 지은이는 변화하는 환경에 새들이 얼마나 빨리 행동을 적응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유전적 차원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들이 개체군 내에서 일반화되려면 최소한 수백 년은 족히 걸린다는 점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새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다음 세기 안에 전체 새의 15%가 멸종, 1000종 이상의 새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때문에 생활양식이 특수하고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대단히 민감한 종들은 쉽게 멸종할 것이라고 책은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