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은행나무> 강판권 지음ㅣ문학동네 펴냄


<지데일리> 은행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여름내 짙은 푸르름을 드리우다가 가을이면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 앞에 당당히 그 자태를 뽐낸다.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천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우리 땅에서 우리 민족의 질곡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은행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은행나무를 문화·역사학적으로 고찰해 옛사람들의 정신과 철학을 되새기고 있다.


서울 시내 가로수 중 40퍼센트를, 우리나라 식물 천연기념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나무는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다. 은행나무가 의미 있는 것은 단지 임진왜란 등 한반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전란을 이겨내고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을 지켜왔기 때문만이 아니다. 


긴 세월 동안 은행나무는 때로는 어머니 같은 보살핌으로, 때로는 모두의 소망을 들어주는 너그러움으로, 때로는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는 따스함으로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로 굳건히 자리해왔다. 한국인의 삶 속에 녹아 우리의 희로애락을 변치 않는 모습으로 함께해왔기에 은행나무는 우리 마음속에 굳건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인간의 지친 몸을 달래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은행나무는 수백 년 동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마을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은행나무를 찾았다. 어머니들은 은행나무 앞에서 자식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아이를 낳은 뒤엔 아이가 병 없이 자라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버지들은 은행나무 앞에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올려놓고 홍수와 가뭄을 없애달라고 빌었다. 마을 아이들은 은행나무 앞에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이처럼 은행나무는 한 마을의 수호신이었다.

 

이렇게 자리 잡은 은행나무는 한국인의 문화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며 새롭게 태어났다. 의령 유곡 은행나무나 성균관 은행나무처럼 석회동굴의 종유석과 같이 생긴 유주(乳柱)를 가진 은행나무가 있다. 


이는 일종의 발육장애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지만, 다른 어떤 도구보다 인간의 몸 자체가 주된 생산수단이었던 시절에 사람들은 은행나무의 유주를 만지며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젖이 많이 나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선인들이 은행나무의 신령스러운 힘에 기댄 것은 다산 풍속에만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치병을 위해 백일 동안 그 앞에서 치성을 드렸다는 복지겸의 딸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은행나무를 찾았다. 


은행나무는 자신의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 농민들이 풍년과 흉년을 가늠하게 했고, 전쟁과 같은 큰일이 터질 때면 큰 울음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지켜주기도 했다. 이처럼 은행나무는 개인과 마을, 나아가 국가의 안위를 지켜준 우리의 ‘수호신’이었다.

 

우리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

 

서원, 고택, 정자, 성균관, 향교와 같은 유교 관련 유적지에는 공자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은행나무 역시 공자와 무관하지 않다. 


유교 관련 유적지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은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杏壇)’에서 유래했다. ‘행(杏)’은 본래 살구나무를 의미하지만 ‘행단’으로 사용할 때는 오로지 은행나무의 의미만 가진다. 


행단을 은행나무로 의도적인 선택을 한 것은 긴 수명과 친인척 하나 없다는 특징이 유교의 유구한 정신과 독자성을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에 담긴 이런 의미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유교 관련 유적지에 담긴 정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경(敬)’은 퇴계 이황이 평생토록 연구한 철학 개념이다. 퇴계가 ‘경’에 평생을 바친 이유는 이것이 성리학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경’은 ‘경으로 안을 바르게 하다’는 구절에서 보듯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는 공부법으로 성리학에서 반드시 체득해야 하는 덕목이다. 이른바 ‘경’ 공부법은 중국 북송대의 성리학자인 정이가 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주일무적’이다. 주일무적은 마음을 한군데에 집중해 잡념을 없앤다는 뜻으로 마음을 경에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경’은 불교의 선과 기독교의 기도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법이다. 주세붕이 ‘경’ 자로 귀신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정신일도하사불성처럼 외물에 현혹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면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소수서원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에도 이 나무의 삶을 통해 경을 배우라는 준엄한 뜻이 담겨 있다. 요즘 사람들도 서원에서 은행나무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수서원 은행나무는 그 주변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섰을 때 처음 만나게 되는 것도, 조선시대 최고(最古)의 정자인 경렴정을 함께하는 것도, 유생들이 잠시 머리를 식혔던 소혼대나 취한대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도 은행나무다. 


이렇게 유생들이 생활하는 곳곳에 은행나무가 위치하는 것은 이 나무의 삶을 통해 경(敬), 즉 성리학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삶 자체가 공부이고 삼라만상이 스승이라는 성리학의 요체는 은행나무로 집결된다. 마치 유생들이 자신처럼 강인한 꿈을 꾸길 바라는 것처럼 은행나무는 늘 그곳에서 유생들의 곁을 지켜준 셈이다.

 

동양 최대, 최고의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이 자란 나무를 우러러 보노라면 자연스레 그에 대한 경외심이 생긴다. 


천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후손을 남기기 위해 부지런히 열매를 만들고, 자신의 곁에서 후손을 키우는 모습은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의 은행나무를 만나기 위해 수없이 길을 나섰다. 한 그루의 은행나무를 찾아나서는 것은 곧 나무의 삶을 배우는 구도자의 길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은행나무도 많고, 더욱이 내가 사는 곳과 다소 먼 곳에 살고 있는 은행나무는 겨우 한 번 정도 만났을 뿐이다. 한 존재에 대한 이해가 그러하듯, 한 그루의 은행나무를 오롯이 이해하려면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만나야 한다. 그러나 억만 번을 만나더라도 절실히 만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번을 만나더라도 존경과 존중의 마음으로 만난다면 위대한 은행나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존경과 존중이야말로 성리학자들의 실천덕목이니, 한 그루의 은행나무를 만나는 일은 곧 성리학자의 실천덕목을 배우는 것과 같다.

 

은행나무를 찬미하는 글은 많지만, 은행나무에 대한 전설은 문헌상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비록 기록은 부족해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은 은행나무의 삶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마의태자와 의상대사의 전설이 얽혀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 보조국사 지눌의 지팡이에서 자라났다는 전설이 전하는 청도 적천사의 은행나무, 홍수가 났을 때 이색을 구해주고 그의 무죄를 밝혀준 청주 중앙공원의 은행나무 등 굵직한 인물과의 사연이 얽힌 은행나무에서부터 신통한 뱀이 살고 있어 마을을 지켜준다는 전설이 전하는 은행나무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은행나무를 하나하나 찾을 수 있는 책이다.


한주연기자 82blu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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